“귀여워 쓰다듬다 반항해 죽였다.”,“힐끗힐끗 봐 폭행” 앞의 인용은 경기 안양의 두 어린이를 무참하게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피의자의 발언이고, 뒤의 인용은 일산에서 한 어린이를 납치하려다 검거된 성폭행 전과자의 발언이다. 이 두 피의자의 발언은 당시 모든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각각 보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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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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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서울신문도 3월20일자 8면과 4월1일자 1면에서 두 피의자의 발언을 따옴표로 처리하여 커다란 제목으로 뽑았다. 물론 당시 시점에서 용의자가 자신의 범행을 처음으로 시인하는 발언을 하였다는 점에서 상당한 보도가치가 있는 발언이기는 하다.
사건 보도에서 일정한 시간이 흐른 지금, 그리고 더 많은 범행 관련 사실이 알려진 현재의 시점에서 두 피의자의 발언은 과연 인용할 가치가 있는 발언인지를 새삼 되묻게 된다.
첫째로 그 발언 자체의 정황상 신빙성 여부다. 어린이가 ‘힐끗힐끗 보아서 폭행’하였다는 진술이나 ‘귀여워서 쓰다듬었다’는 발언은 누가 들어도 꾸며낸 발언임을 알 수 있다.1987년의 민주화운동을 촉발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탁’하고 치니,‘억’하고 죽었다.”던 발언만큼이나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발언인 것이다.
이 인용의 두번째 문제는 이 발언이 기자가 피의자에게서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계자를 통하여 ‘전해들은’ 발언이라는 점이다. 비록 경찰의 발표이기는 하지만 ‘전해들은 발언’은 아직 사실과 진실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발언인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인용의 세번째 가장 큰 문제는 사건의 피해자와 가족에게 주는 영향이다.
용의자의 발언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피해자의 태도나 행동을 구실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의도가 담겨있는 용의자의 발언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커다랗게 인용이 될 경우에 피해자나 그 가족은 다시 한번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수사과정에서 혐의자의 발언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거나 여론과 법정의 처벌을 완화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는 발언이 많다. 게다가 용의자의 과거 행적이나 그 이후 수사과정을 보면 이러한 발언이 사실이나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은 쉽게 유추하여 볼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나 데스크의 입장에서 보면 문제의 용의자가 범죄 혐의를 처음으로 시인하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발언의 기사가치를 높게 두는 경우가 많다. 그렇더라도 이처럼 용의자의 의도적인 발언을 그대로 인용보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앞서 제목에서 인용된 용의자의 발언은 따옴표 대신 ‘검거된 용의자, 처음으로 범행시인’과 같이 풀어서 쓴 제목으로 처리하고 용의자의 발언 내용은 기사의 본문에서 범행을 시인하였다는 단서 중의 하나로 다루는 것이 더 타당한 방식이라고 본다. 따옴표에 의한 직접인용이 사건진행의 극적인 현장감을 전달하는 면에서 앞서지만, 이 시점에서는 범행의 시인 여부가 범행의 구실보다 보도가치가 있는 더 중요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황상으로 보면 ‘구실’에 지나지 않는 발언을 크게 인용하는 것은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는 대형 사건이나 강력범죄가 발생하면 경쟁지보다 앞서 ‘보다 신속하게’,‘보다 생생하게’ 사건현장을 전달하려는 취재경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흘러나온 당사자의 발언을 모두 기사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면 결과적으로 사실과 다른 발언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용의자가 그러한 발언을 하였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발언 내용이 사실도, 진실도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2008-05-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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