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살림살이의 근간인 새해 예산안이 정치권의 고의적인 직무유기로 방치되고 있다. 헌법상 처리시한인 12월2일을 넘긴 데 이어 정기국회의 회기가 끝나는 9일까지도 처리가 불투명하다. 한나라당은 대선(19일)이 끝난 뒤 26일부터 심의에 들어가 올 연말까지 처리해주겠다는 입장이다. 대외적으로는 5조원 규모의 순삭감을 주장하고 있으나 대선에서 차기 집권이 확정되면 한나라당의 정책 기조에 맞춰 대폭 손질하겠다는 의도인 것 같다. 과거 대선의 해에는 11월 중 새해 예산안을 처리했던 것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지연논리다.
국회가 헌법 규정을 무시해 가며 예산안의 처리시한을 어긴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참여정부 들어서는 사학법 등 각종 개혁법안의 처리와 연계하면서 연말에 가서야 통과시켰다.‘심도있는 예산 심의’는 핑계였던 것이다. 이번에도 한나라당은 257조원에 이르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7조원을 삭감하고 2조원을 순증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마지막까지 과도한 팽창예산으로 일관하고 있는 참여정부의 ‘예산 알박기’를 견제하려는 한나라당의 삭감 요구는 일면 일리가 있다. 하지만 예년의 4∼5배에 이르는 예산 삭감은 이해관계자들의 집단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구체적인 삭감 내역은 적시하지 않은 채 무조건 삭감 총액만 요구하는 것은 대선을 겨냥한 정략이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은 차기 집권이 결정되면 내년도 예산안을 마음대로 칼질할 수 있을 것으로 볼지 모르나 오산이다. 원내 제1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이 순순히 응할 리가 없다. 자칫하다가는 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이라는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한나라당은 더 이상 나라 살림살이를 대선 볼모로 잡지 말고 심의에 적극 나서기 바란다.
2007-12-0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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