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80/20의 법칙/이득재 가톨릭대 노문학 교수

[문화마당] 80/20의 법칙/이득재 가톨릭대 노문학 교수

입력 2007-11-22 00:00
수정 2007-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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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는 20년 동안 철도기사로 일하다가 경제학으로 관심 방향을 바꾸었다. 그는 그 스스로 행한 여러 가지 경험적인 관찰들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네크워크과학 이론가인 A L 바라바시에 따르면 파레토는 원예사로서 80%의 완두콩은 20%의 콩깍지에서 생산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한 그는 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예리한 통찰의 결과 이탈리아 땅의 80%는 인구의 20%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냈다.‘80/20의 법칙’으로 알려진 파레토의 법칙 내지 원리는 최근 머피의 경영 법칙으로 발전했다. 이 법칙에 따르면 기업 이윤의 80%는 종업원 중 20%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파레토 자신은 한 번도 80/20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없지만 이 표현은 주식투자 등 비즈니스 관련 문헌, 통계 문헌 등에서만 공공연히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따른 사회 양극화를 이야기하는 데에도 단골 메뉴로 쓰이고 있다. 전체 돈의 약 80%를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벌어간다는 사실이 파레토의 발견 이후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 주변에 그대로 존재하고, 미국 사람들 10명 중 8명은 가난하게 태어나더라도 열심히 일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80/20의 법칙은 맞긴 맞는 법칙인가 보다.

하지만 2005년도 통계로 전 세계 백만장자가 870만명이라면 이때에는 파레토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가난하게 태어나도 열심히 일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이데올로기이고, 정작 세상은 그 이데올로기에 의해 로또 복권으로 한 방 날리려는 도박판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유전유학·무전무학의 세상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바라바시가 말하듯이 멱(冪)함수 법칙에 따라 다수의 작은 사건들이 소수의 큰 사건들과 함께 발생한다고 해서 대부분의 다수는 아주 적은 돈만 벌고 대부분의 돈은 소수의 매우 부유한 사람들이 버는 식으로 소득 분포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식으로 과학의 법칙을 사회의 법칙에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이 올바른 일일까? 그렇다면 삼성 이건희 회장이 말하듯이 천재 한 명이 10만명을 먹여살린다는 말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아닌가? 파레토 법칙은 자칫하면 80/20의 사회를 긍정하는 논리로 사용될 수 있다.

파레토나 바라바시가 주장하는 것은 웹이든 할리우드이든 세포든 복잡한 시스템들의 배후에 법칙이 있다는 것인데, 그 법칙이 멱함수 법칙을 따른다고 해서 두 개의 한국, 두 개의 일본, 두 개의 미국을 80/20의 틀로만 설명하는 것은 왠지 찜찜한 구석이 있다. 왜냐하면 두 개의 한국, 두 개의 일본, 두 개의 미국은 신자유주의가 필연적으로 만들어낸 산물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비정규직이 30% 이상이나 되고 맥잡(McJob)이라는 용어에서도 표현되듯, 미국도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으며 하루에 7달러 이하로 사는 사람의 숫자가 7600만명이나 된다. 한국은 비정규직 비율이 55%나 된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한 사회가 80/20으로 양극화되는 것은 파레토의 법칙 탓이 아니라 그 법칙 배후에 있는 신자유주의 때문이다. 콩, 땅, 이윤, 소득 등이 서로 다른 형태에도 불구하고 일정하게 파레토의 법칙을 따른다고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를 중심으로 파레토의 법칙을 작동시키는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흐름이 준비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미래에 ‘저주받은 88만원 세대’로 살아갈 전망이다. 신자유주의가 청산되지 않는 한 신자유주의는 세계 각국을 제국의 네트워크로 연결시켜 그 제국에 파레토의 법칙을 심어 나갈 것이다. 바라바시는 파레토의 경험적 관찰을 넘어 80/20에 대한 대항논리를 네트워크과학에서 찾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이득재 가톨릭대 노문학 교수
2007-11-2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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