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過猶不及 참여정부/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過猶不及 참여정부/이목희 논설위원

입력 2007-01-16 00:00
수정 2007-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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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의 취재방법 중 ‘벽치기’란 게 있다. 벽이나 문틈에 귀를 대고 엿듣는 것이다. 그리 떳떳해 보이진 않지만 벽면의 미묘한 떨림으로 방안의 대화내용을 귀신같이 알아냈던 동료·선배들이 있었다.1980년대말 4당 체제에 여소야대로 정국이 혼미했던 시절, 한 기자가 과도한 벽치기에 나섰다. 벽장 비슷한 곳에 숨어 2시간여에 걸쳐 여야 총무(현재의 원내대표)회담 내용을 상세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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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희 논설실장
이목희 논설실장
그때 여당 총무는 고인이 된 김윤환씨. 야당은 김원기·최형우·김용채씨로 모두 쟁쟁했다. 회담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돼 김윤환이 언론 발표문을 내놓았고, 야3당 총무는 흔쾌히 동의했다. 김윤환은 “금방 나가면 기자들이 야합했다고 하니까, 좀더 진통하는 모습을 보이자.”고 했다. 그리고 이어진 여야 총무들의 인간적 대화. 각자의 보스를 흉보기도 하고,“당신 총재는 성격이 까다로우니 요렇게 보고하라.”는 충고가 오갔다. 당시 야당 보스들은 김대중·김영삼·김종필 등 3김씨. 깐깐한 상전을 모셨음에도 이들은 나름의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여야 총무들의 그같은 대화가 돈과 자리, 민원으로 흥정하는 밀실정치 때문에 가능했을까. 아무리 거래가 오고 가더라도 평소의 인간관계, 상대와 공존하겠다는 자세가 없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시추에이션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한 데 대해 야당들은 콧방귀를 뀌고 있다. 청와대 오찬 초청에 일제히 불응해 대통령에게 망신을 주었다. 여당이나 청와대에 김윤환 같은 참모가 있었다면 어찌 했을까.“인기없는 보스가 되지 않을 일을 자꾸 하려고 해서 골치아파 죽겠다. 그래도 대통령 체면이 있는데 한번 들어나 달라.” 그렇게 자리가 성사되고, 진솔한 대화가 오가다 보면 역사는 만들어진다.

여야의 개헌 대화는 이제 물건너 갔다고 본다. 노 대통령은 대국민 설득으로 난국을 돌파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번에는 언론과의 관계가 발목을 잡는다.‘불량상품’이라고 싸잡아 매도해 놓고 협조해달라고 하기가 껄끄럽다. 일부 인터넷 매체를 빼곤 반노(反盧)·친노(親盧)를 떠나 대부분 언론이 개헌 반대다. 압도적 다수의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괜찮은 상품을 갖고도 “당신이 팔면 안 산다.”고 하니…. 답답하겠지만 과유불급의 자업자득이다. 야당과 인간적인 물밑 대화조차 나눌 정치력 없음을 밀실정치 타파로 포장하면 안 된다. 술 사고, 밥 사야 기사 잘 써준다며 기자들을 깎아내리는 것을 언론개혁으로 미화해서도 안 된다.

인재풀이 좁긴 하나 참여정부에 융통성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유인태·문희상·김부겸 의원과 김원기 전 국회의장, 야당과 자주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왜 안 하는가. 팽팽 도는 머리와 구수한 입담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녹였던 김한길 원내대표, 마음은 통합신당의 콩밭에 가 있는가. 청와대 윤승용 홍보수석, 기자 시절의 친화력은 어디에다 버렸는가. 대변인을 두번이나 한 윤태영 연설기획비서관, 출입기자들도 설득하지 못하는가.

개헌만이 문제가 아니다. 야당과 언론이 이런 식이라면 노 대통령의 남은 임기 1년은 망신살의 연속일 것이다. 열받은 대통령은 판단이 흐려지고, 국정은 크게 흔들리고…. 뻔히 보이는 시나리오를 방치해선 안 된다. 노 대통령이 흥분할 때 한 술 더 뜨지 말고,“그래도 잘해보자.”며 야당과 언론을 향해 성의있게 다가서는 정치인과 참모를 보고 싶다.

이목희 논설위mhlee@seoul.co.kr
2007-01-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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