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에]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동익 가톨릭대 교수·신부

[토요일 아침에]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동익 가톨릭대 교수·신부

입력 2005-10-29 00:00
수정 2005-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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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가까운 친지 한 분이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50대 후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다가온 죽음이었기에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을 매우 슬프게 하였지만 정작 망자 자신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세 달 전 의사로부터 죽음 선고를 받고 곧바로 내게 고해성사를 청한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 중에서 부끄럽게 느껴왔던 몇 가지 일들에 대해 차분히 고백하였고, 이제야 비로소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남은 생애동안에 이 평상심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의 삶을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그의 유일하고도 소박한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원했던 것처럼 그렇게 생을 마칠 수 있었다.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던 췌장암의 신체적 고통도 그에게는 없었던 것을 보니 하느님께서 그의 바람을 모두 들어주신 것 같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는 인간 실존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사고나 질병에 따른 급작스러운 죽음이든, 노년의 죽음이든 간에, 죽음을 맞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와 반응은 상당히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사실 죽는다는 것은 한 인간의 삶이 가져다주는 모든 가능성을 한순간에 소진한다는 의미이며 때로는 죽음이라는 마지막 순간에 처해 있는 사람을 이 세상에서 완전하게 결별시키는 악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세상을 하직하고 가족·친지들과 영별한다는 것, 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쌓아왔던 모든 업적이나 인간관계를 한꺼번에 무너뜨린다는 것은 죽음을 앞둔 이에게 상실의 공포로 다가오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너무나 허무하게 느껴지게도 한다.

죽음이란 것은 이렇게 커다란 고통으로 다가오기에 사람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특히 진통제에 의존하지 않으면 잠시도 안정을 취할 수 없는 말기환자나, 불치병으로 근근이 생명을 유지하면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환자들이 당면하고 있는 죽음에 대한 부정적 체험은 환자 자신에게 그 모든 고통은 하루라도 빨리 벗어버려야 할 무거운 짐이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고통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현대인들에게 가져다준 것이 곧 안락사에 대한 긍정적 사고방식이다. 고통이 인간적인 비애와 소외를 가져오고 결국 이를 벗어나기 위한 최상의 방편은 안락사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안락사 지지의 이유는 ‘품위있는 죽음’이라고 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의 고통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기 때문에 죽음의 순간에도 당당하게 죽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위에서 의료적 도움을 받아 고통없이 편안하게 죽는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죽음이 ‘품위있는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품위있는 죽음’이란 결코 안락사 형태의 죽음이어서는 안 된다. 참된 의미의 인간적 품위를 갖춘 죽음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책임감 있는 자유와 의식을 가지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죽음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피하는 죽음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죽음이다. 비록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스럽더라도 내 삶을 돌아다보고 그 삶에 감사드리고, 또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희망을 가지고 남은 삶을 하느님께 맡겨드리는 모습이 진정한 ‘품위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일 것이다.

나는 그 형제의 죽음에서 ‘품위있는 죽음’을 보았다. 눈앞에 다가온 자신의 죽음에 대한 그 극심한 고통을 감사와 희망으로 극복할 수 있었고, 이는 주위 사람들 모두에게 인간으로서의 참된 품위와 하느님의 사랑을 재확인시키는 한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단풍이 절정에 이르러 그 아름다움에 숨이 막힐 것 같은 계절이다. 계절의 끝에서 그 아름다움을 한껏 발산하는 나무들처럼 죽음이라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참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이동익 가톨릭대 교수·신부
2005-10-2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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