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급식조례 대법원 판결 유감/변희경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시론] 급식조례 대법원 판결 유감/변희경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입력 2005-09-21 00:00
수정 2005-09-21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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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생산·수출업체인 중국의 A공사는 한국정부로부터 92.27%의 반덤핑관세를 부과받았다. 그런데 한국정부의 덤핑판정은 세계무역기구(WTO)협정에 위반된 것이었다.A공사는 한국정부의 조치가 WTO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곧바로 한국법원에 제소하여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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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경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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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중국 정부는 한국 휴대전화에 대해 긴급수입제한 조치로 300%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같은 중국정부의 조치 또한 WTO협정에 명백히 위반되는 것이었으나, 휴대전화 수출업체인 B전자는 중국 법원에 직접 제소하지 못하고 WTO에 제소해 줄 것을 한국정부에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6자회담에서 중국정부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WTO에 제소하지 않아, 결국 B전자는 고율의 관세 부담으로 인해 수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위 상황은 하나의 가정에 불과하나, 지난 9일 대법원은 실제로 위와 같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학교급식에 국내산 농산물만을 사용하도록 한 전라북도학교급식조례가 WTO협정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WTO협정이 국내법령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고 판결함으로써, 국제통상법학계의 오랜 쟁점인 ‘WTO협정의 직접효력’을 명확히 인정한 것이다.

헌법 제6조 제1항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WTO협정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의 비준을 거쳐 공포되었으므로, 헌법에 따라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가진다는 대법원의 논지는 법논리적으로는 타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법원 판결은 우리 아이들이 우리 농산물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앞으로 우리가 맞게 될 국제통상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의 주요 무역대상국인 미국은 법률에 의하여 WTO협정의 직접효력을 부인하고 있다. 유럽사법법원(ECJ) 및 일본 최고재판소도 마찬가지다. 이들 국가와의 무역에서도 앞서 염려한 문제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고 그때마다 우리 국민의, 우리 회사의 권익보호가 불리해질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은 법원이 법리적 해석을 통해 WTO협정을 직접 적용할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런데 WTO협정은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로 되어 있고 한국어 번역문은 법률적 효력이 없다.

따라서 법원이 해석론을 통해 직접효력을 부인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WTO에는 다양한 분쟁사례에 관해 WTO협정을 해석해 놓은 수많은 판례가 있는데, 우리 법원이 국제적인 무역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에 어느 정도 구속돼야 할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나아가 위에서 언급한 헌법규정에 비추어 봤을 때 WTO협정의 해석론을 통한 해결방안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결국 국회가 입법활동을 통해 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WTO협정은 회원국의 국내법이 WTO협정에 합치될 것을 요구하고 있을 뿐 이를 직접 적용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그러므로 정부와 국회가,WTO협정의 직접효력을 부인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면 WTO협정 위반을 이유로 대한민국 법원에 제소할 수 없도록 하는 등 명확한 적용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변희경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2005-09-2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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