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공간] 한 알의 밀알만 썩는 것이 아니다/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녹색공간] 한 알의 밀알만 썩는 것이 아니다/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입력 2005-07-18 00:00
수정 2005-07-1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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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시인은 조개껍질을 보고 “물렁물렁한 것이 떨어져 나가고/딱딱한 것만 남아 있다.”고 읊었다. 그의 시는 이렇게 끝나고 있다.“그러나 무늬들도 차츰 지워진다/마치 흐름소리 ㄹ,r,l 이/침묵하는 어떤 긴 흐름을 조용히 뒤따르는 것처럼.” (최승호 시집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에서,2003)

여기서 무늬는 조개껍질의 그것을 말한다. 무늬가 지워진다는 말은 조개껍질도 언젠가는 분해된다는 뜻이다. 진토되는 시간이 길게 걸릴 뿐이다. 시인은 생태학적 원리를 감성적으로 그리고 있다.

어떤 것은 빨리 썩고 어떤 것은 느리게 분해된다. 물렁물렁한 것은 빨리 찢겨지고 딱딱한 것은 천천히 마모된다. 조갯살은 빨리 문드러지고, 조개껍질은 느리게 해체된다. 그러나 조개껍질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속도의 차이 뒷면에 자리잡고 있는 성상은 무언인가?

딱딱한 먹이는 물렁물렁한 음식보다 소화하기 어렵다. 그래서 소화력이 약한 노인네들은 딱딱한 음식을 많이 드시면 곤란하다. 소화도 분해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시라. 미생물도 딱딱한 것을 소화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미생물이 좋아하는 것은 빨리 썩고, 싫어하는 것은 느리게 분해된다.

사람들과 미생물이 좋아하는 물렁물렁한 것은 어떤 특성을 지녔을까? 우선 물 함량이 많다. 바짝 말리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보시라. 또한 말랑말랑한 살코기처럼 단백질이 풍부하다. 탄수화물보다는 단백질에 질소가 많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탄소보다 질소 함유량이 더 많다. 다른 말로 하면 탄소/질소 비가 낮다. 말랑말랑한 것은 물과 질소가 풍부하여 미생물이 좋아하고, 그래서 잘 썩는다.

거친 먹이의 탄소/질소 비는 상대적으로 높다. 동물이나 미생물에 비해서 식물의 탄소/질소 비는 높다. 그래서 거친 식물을 먹이로 하면 사람이든 미생물이든 몸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질소가 필요하다. 질소를 보충하기 위해서는 탄소/질소 비가 낮은 물렁물렁한 음식을 찾아야 한다. 거친 먹이를 먹은 미생물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영양소를 찾아 먼저 사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물렁물렁한 것이 잘 썩는 생태학적 이치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환경 문제는 사람들이 미생물이 싫어하는 물질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데서 비롯된다. 자연도 성가신 미생물을 이기기 위해 딱딱한 것을 만들기는 하지만 사람만 못하다. 이를테면 박으로 만든 바가지보다는 플라스틱 바가지가 딱딱하고 오래간다. 미생물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 땅 곳곳에서 쓰레기장과 화장터를 받지 않으려는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사태들을 보라. 서울의 인조산 난지도를 보라. 이 많은 문제는 썩는 속도가 느린 데서 발생한다. 잘 썩어서 왔던 곳(보통 흙)으로 금방 돌아가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는 데서 문제가 비롯된다. 그것들이 어느 날 문득 한 줌 먼지로 덧없이 날아가 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이 이미 미생물이 아주 싫어하는 것을 만들어 놓았으니 그것은 쉽사리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으면 새싹이 돋아나지 않는다. 굳이 기독인이 아니라도 너도나도 들었고, 또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말이다. 어찌 밀알뿐이겠는가? 썩음을 딛고 일어나지 않는 삶이 이 땅에 어디 있는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썩어야(나누어져야) 생기는 원소를 먹고 산다. 분자로 이루어진 먼지가 더욱 나누어져야 그곳에서 생명의 필수영양원소가 나온다.

썩는 것을 학술적인 용어로 분해라 한다. 형체가 있는 것에서 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아주 작은 존재로 부서지는 과정을 말한다. 썩는 것은 유기물이고 썩어서 생기는 산물은 무기물이다. 그래서 그 마지막까지 가는 과정을 무기염화(無機鹽化)라 한다. 유기물이 생성되고 무기염화되는 현상을 묶어서 영양소 순환이라고 한다. 이 건조한 용어들이 모두 부드러운 녹색과 거리가 있는 듯싶으나 숨은 뜻은 나중에 살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2005-07-1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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