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공간] 바다가 육지라면/안병옥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녹색공간] 바다가 육지라면/안병옥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입력 2005-06-20 00:00
수정 2005-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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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말이 부서지는 파도와 하얀 백사장이 그리워지는 계절, 문득 7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이란 노래가 떠오른다.“파도가 길을 막아 가고파도 못갑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바다에 가로막혀 뭍으로 가지 못하는 신세를 애달파한 노래다. 바다는 고립된 섬과 그리운 사람이 숨쉬고 있는 머나먼 땅 사이에 가로놓인 장애물로 묘사된다.

모더니즘 시인 김기림의 ‘바다의 향수’에서 바다는 애써 외면하고 싶은 열악한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시인은 “날마다 푸른 바다 대신에 / 꾸겨진 구름을 바라보러 / 엘리베이터로 / 5층 꼭대기를 올라간다.” 대표작 ‘바다와 나비’에서도 바다는 “나비를 받아들이지도, 삼월에 꽃이 피지도 않는 무생명의 불모지”일 뿐이다. 바다는 현실과 피안의 세계 사이의 거리가 멀다는 것을 뜻하는 유력한 수단인 것이다.

생명은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자라게 하는 비와 눈의 근원도 바다에서 증발한 물이다. 하지만 바다는 원초적인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무질서와 혼돈의 세계이기도 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바다에 얽힌 신화나 전설이 많은 것은 그 한없는 넓이와 깊이 때문이다. 사나운 폭풍우, 짙은 안개, 배를 삼키는 괴수… 역사 속에서 깊은 바다는 언제나 ‘악마의 도메인’이었다.

불과 300년 전만 해도 바다에서 수영하는 일은 서양에서조차 금기였다고 한다. 바다는 신비한 베일에 싸인 지하세계로 통하는 관문이었다. 해일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을 때면 고양이와 개, 때로는 집시의 자식들이 산 채로 제물로 바쳐졌다. 해난(海難)에 따른 희생을 막기 위해 바다에 미리 제물을 바치는 역설은 바다를 ‘위해의 근원’으로 보는 관념을 빼면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바다는 언제나 정복의 대상이기도 했다. 바다를 지배하려는 욕망은 바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결국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은 문화사의 관점에서 ‘바다가 육지라면’과 다르지 않다. 바다는 때로 ‘꽃피지 않는 무생명의 불모지’가 아니라,‘육상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탈출구’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바다가 여전히 알 수 없는 세계로 남아 있기 때문에 오히려 천대받는 예는 무수히 많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바다에 폐기물을 버리는 행위다. 바다를 폐기물 투기장소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 초기로 추정된다. 그 배경에는 바다가 인간의 생활 근거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폐기물을 무한대로 희석시킬 수 있다는 얄팍한 계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넓고 깊은 심연의 바다라지만 증가하는 폐기물 양과 독성을 버텨낼 재주는 없었다. 핵폐기물까지 내다버리게 되면서 물고기와 물개들이 떼죽음당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 것이다. 결국 폐기물의 투기로부터 바다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런던협약이 1972년 제정되었고,1996년에는 의정서를 채택하여 투기허용물질의 종류를 대폭 줄였다. 이 의정서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발효될 전망이다.

우리나라가 동해안과 서해안에 버리는 폐기물의 종류는 양도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 분뇨, 축산폐수는 물론 하수처리찌꺼기와 폐수처리찌꺼기까지 내다버리고 있다. 처리시설에서 기껏 많은 돈을 들여 걸러낸 오염물질이 대부분 바다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런던협약의 홈페이지에는 “당사국 가운데 오직 한국, 일본, 필리핀만이 하수처리오니를 바다에 버리고 있다.”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바다에 내다버리는 폐기물 양의 증가 속도는 실로 놀라울 정도다. 작년 말 약 975만t을 내다버려 1990년에 비해 10배 가량 증가했다. 특히 하수처리찌꺼기와 축산폐수는 같은 기간 45배에서 154배까지 증가했다고 한다. 해양수산부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육상에서의 직매립을 금지해 해양투기 증가에 한 몫을 담당한 환경부의 반발 때문이다.

폐기물을 바다에 내다버리는 것은 ‘바다가 육지라면’이라는 열망의 비틀린 단면에 불과하다. 바다가 육지라면 거대한 온풍기와 에어컨이 사라져 지구의 기후조절기능이 마비될 수밖에 없다. 투기장으로 변한 바다에서 휴식과 낭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더위를 식히러 바다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안병옥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2005-06-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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