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럽헌법 좌초와 한국통일/이덕일 역사평론가

[열린세상] 유럽헌법 좌초와 한국통일/이덕일 역사평론가

입력 2005-06-11 00:00
수정 2005-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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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헌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잇달아 거부되면서 통합유럽호가 좌초위기를 겪고 있다. 유럽헌법의 핵심조항은 ‘대통령직과 외무장관직 신설, 집행위원회 구성, 상호안보, 기본권 헌장, 이중다수결제도, 핵심정책 거부권 폐지’ 등인데, 이중 핵심정책 거부권에 대한 우려 때문에 반대표가 많아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유럽헌법이 가져올지도 모를 경제적 불안감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년 5월 동구권 10개국가가 한꺼번에 EU에 가입한 것이 기존 회원국 국민들의 불안감을 확산시켰다는 것이다.EU의 40% 수준인 동구권 국가들의 가세가 자신들의 경제상황을 악화시킬지도 모른다고 지레 짐작한 것이다. 결국 유럽헌법안 부결의 속내는 통합비용 지불에 대한 거부인 것이다.

이는 우리의 통일문제를 돌아보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다.2004년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914달러로 남한의 16분의1 수준이다. 남북이 통일될 경우 한국이 막대한 통일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그 구체적 액수에 대해서는 일치된 견해가 없지만 2003년 홍콩의 HSBC는 통일 첫 해 국내 총생산의 4.4%(236억달러)가 들 것으로 예상했다(서울신문 2003년 3월3일자). 마커드 놀랜드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0년간 매년 600억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는데,10년간의 통일비용을 원화로 환산하면 약 700조원이었다(매일경제 2003년 10월14일자). 이보다 앞서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2000년 통일 후 10년간 최소 7700억달러(약 855조원)에서 최고 3조 5500억달러(약 3940조원)가 들 것으로 예상했다(문화일보 2000년 4월21일자). 물론 이런 연구 결과들이 어느 정도 정확한지는 통일이 되어 봐야 알겠지만 막대한 비용이 들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와 네덜란드 국민들이 경제적 불이익의 발생을 우려해 유럽헌법을 부결시킨 사례는 우리에게 통일문제에 대해 보다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할 당위성을 말해주고 있다. 군사비와 젊은이들의 의무 징병비용 등 분단비용도 만만치 않다며 무조건적 통일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반론도 있지만 군사비와 의무 징병비용 등은 분단비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주독립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비용이라는 점에서 큰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중국과 일본이 군비경쟁에 나서는 현재의 동북아 상황에서 통일을 달성했다고 우리만 군을 해체하거나 우리 영토를 방어하지 못할 정도로 대폭 축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세계사적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일을 이룩해야 하지만 자칫 섣불리 접근할 경우 기존의 성과마저 무효로 돌릴 수 있는 파괴력이 있기 때문에 통일문제는 냉정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 요구된다. 통일에 대한 전략적, 전술적 로드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이 남북한 국민 모두에게 상호이익이 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만약 일정 정도 피해가 발생한다면 그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우리가 감내할 만한 수준의 피해인지 등에 대한 다양한 시뮬레이션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교류 상황은 로드맵이란 말을 사용하기가 민망하다.20만t의 비료를 갖다 바친 끝에 맺은 합의가 일방적으로 파기되어도 항의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수용하는 조공(朝貢)식 교류가 통일 로드맵에 의한 것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행태가 반복된다면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통일에 대한 회의가 확산될 것이 우려된다.‘역사적’이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던 6·15회담이 몰래 달러를 갖다 바치고야 성사되었다는 사실 하나가 드러나면서 ‘6·15합의’에 감동하는 장삼이사(張三李四)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지 않았던가. 갈 길이 멀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설계도도 없이 거대한 집을 짓겠다고 덤비다가는 10년 이상 흉물로 방치되고 있는 105층짜리 평양 류경호텔 꼴이 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이덕일 역사평론가
2005-06-1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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