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선진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선진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육철수 논설위원

입력 2005-05-17 00:00
수정 2005-05-1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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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북핵이다 경제다, 하도 뒤숭숭해서 이 정부의 국정목표는 뭐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며칠전 이런 걸 잘 설명해 줄 만한 정부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대뜸 물어봤더니 “국민이 식상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아 출범 초기에는 일부러 국가비전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참여정부의 탄생 배경에는 사실 연극적 요소가 많고, 정권창출의 주요 지지층이 인터넷세대와 386세대이다 보니 과거 정부처럼 아날로그식 구호 같은 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2년쯤 지나서 보니 아날로그와 디지털세대의 접점 필요성을 느꼈고, 그래서 ‘선진한국’이란 국가비전을 올해 초부터 내놓았다는 얘기였다.

육철수 논설위원
육철수 논설위원


과거 정부의 경우 국가비전이 한낱 구호에만 그쳤다는 것은 다 알려진 일이다.3공화국부터 유신까지는 ‘조국 근대화’를 어느 정도 이뤘지만 압축성장에 따른 인권침해도 만만찮았다.5공화국은 아군에게 총질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 수천명을 살상한 뒤 등장했는데, 국정목표는 어울리지 않게도 ‘정의사회 구현’이었다. 이어 들어선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는 최고 지도자가 수천억원을 챙겨 대담한 보통사람의 면모를 보여주었다.‘신한국 건설’과 ‘제2건국’도 대통령의 아들들과 측근의 농단으로 국민의 시름만 더 깊게 만들었을 뿐이다. 윗물이 탁한데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가 쉬웠을 리 없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국가에 뭘 바라지 말고 국민이 국가를 위해 기여할 것을 요구했는데, 꿇리는 게 많은 우리의 역대 정권들은 국민에게 당당하게 무얼 요구할 수가 없었던 거다.

‘선진한국’은 과거 정부의 그것과는 달라야 하는데 조짐을 보면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대통령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원칙을 훼손시키고 여론의 비난을 감내하면서 경제인 사면복권 때 한 측근을 기껏 살려놨더니,“맹장수술하려다 아니니까 여드름만 짠 꼴”이라며 억울함을 강변하는 당사자의 태도는 해괴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검찰과 법원이 없는 죄를 뒤집어씌웠다는 것인지. 그러잖아도 대통령은 사사건건 공격을 받아 어려운 처지인데, 개인적으로 속이 상해도 자숙해야지 대통령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드는 게 측근의 도리는 진정 아닐 터이다. 무대 뒤에서 무대 위로 일단 올라섰다면 관객의 시야를 벗어날 수 없다. 무대에서는 주연이든 조연이든 각본에 없는 대사는 구설을 부를 수 있다. 대통령의 고충을 생각한다면 조용히 있거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주변을 떠나 있는 게 옳은 처신이다.

이 정부는 혁신 혁신하면서도 선거에 나갔다가 떨어지면 보답용으로 으레 자리 하나씩 나눠주고, 공기업을 전리품인 양 낙하산 인사를 해놓고도 국민의 이목은 안중에도 없다. 유한(有限) 정권의 국가 개조 한계를 무시하는 과욕에다, 아래 위가 분명해서 연공서열이 더 효율적일 수 있는 조직들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일도 다반사다.

국민은 어떤가. 위법과 탈법과 투기로 말썽피우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부동산 투기를 이쪽에서 단속하면 저쪽에서 툭 불거지고, 신생아의 콧구멍에 볼펜을 꽂아 장난을 치는 간호종사자가 없나, 도덕성이 무기라던 노조간부들의 잇따른 비리, 군대 안 가려고 국적을 포기하는 사회지도층 자녀들….

빙산의 일각이겠지만 참으로 골치 아픈 사람들이다. 이게 선진국을 꿈꾸는 나라의 앞과 뒤에서 벌어지는 일상사다. 대열의 앞에 서 있는 지도자들은 방향감각이 없고, 뒷줄에서는 썩어가는 형국이다. 중간에서 오(伍)와 열(列)을 맞추려고 애쓰는 사람들만 죽을 지경이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앞에서 잘 이끌고 뒤에서 제대로 따라가도 넘을까 말까 한 문턱이다. 국민소득도 높아야 하지만 국민의식도 그에 걸맞게 뒷받침돼야 한다. 과거 정부의 실패가 성공적인 ‘선진한국’의 길을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2005-05-1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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