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호박 예찬/심재억 문화부 차장

[길섶에서] 호박 예찬/심재억 문화부 차장

입력 2004-10-26 00:00
수정 2004-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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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오가는 길에 풀섶을 헤집고는 뒹굴뒹굴 자라는 호박을 보면서 흐뭇해 하셨습니다.“구덩이에 거름을 실하게 했더니 자알 큰다.”시며 요리조리 쓰다듬곤 했지요. 그렇게 키운 호박이 노랗게 익으면 껍질 벗기고 속 들어낸 뒤 얇게 저며 장독대며 지붕에 널어 말렸는데, 이건 한겨울 달디단 호박버무리가 됩니다.

그 호박이 마루 한편에 층층이 쌓여 먹지 않아도 배부른 늦가을 맑은 날, 마루에 둘러앉아 삶은 고구마를 먹으며 어머니가 말합니다.“사람들 쉬운 말로 ‘호박에 침주기’라고 하지만 호박같이만 살믄 세상 척지고 살 일 다. 봐라. 침을 놔도 까딱 않는 참을성에, 두루뭉수리한 게 모난 데 고, 쓰잘데 는 박토에서도 넌출넌출 잘 자라니 사람이 호박만 같으믄 을마나 실하고 든든하겄냐.”

그 호박, 겨울 명절인 설날이나 대보름이면 톡톡히 이름값을 합니다. 흰 떡쌀 층층이 샛노란 청둥호박편이 박힌 호박버무리의 단맛을 어찌 수입 건포도나 초코시럽 맛에 견주겠습니까. 한날, 동네 슈퍼에서 막 딴 청둥호박을 봅니다. 세상의 어머니들, 볏짚 똬리 위에 달랑 이고는 함지박처럼 웃으며 오던 살 두껍고 모난 데 없는 호박.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4-10-2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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