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동네 목욕탕은 조용했다.도회 중학교에 갓 입학한 시골뜨기에게 그날의 목간은 우아했지만 우세스러운 경험이었다.그 전에야 부엌문 닫아걸고 목간통에 앉아 어머니에게 철썩,철썩 등판 맞아가며 밀 것 밀고,닦을 것 닦은 게 고작이었다.그런 촌뜨기가 담임 선생님의 ‘용의검사’ 으름장에 기죽어 목욕탕을 가야 했는데,무얼 가져가야 할지 초장부터 헷갈려 곰곰 물리를 따져 챙긴 게 비누와 수건,그리고 여벌의 속옷이었다.
그 속옷 때문에 일이 꼬였다.목욕탕에 아무도 없었던 탓에 곁눈질로 누구를 흉내낼 염의도 없이 나는 팬티를 입은 채 탕 속에 들어가 느긋하게 자세를 잡았다.‘아무렴,그래도 명색이 뼈대 있다는 사대부가(家)의 혈족인데,비록 목간이지만 중인(衆人)이 번잡한 곳에서 어떻게 마지막 의관을 포기할 수 있을까.’ 사단은 그때 벌어졌다.때밀이 겸 관리원이 눈을 부라리며 다가오더니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윽박질렀다.“얌마,탕 속에 ‘빤스’입고 들어가는 놈이 어딨어? 빨리 안 벗어.”
그렇게 세상을 배운 내가 지금은 이렇게 빤질거리는 깍쟁이가 됐다.너무 어쭙잖아서 그게 희망의 여백이기도 했던 소싯적.
문화부 심재억차장 jeshim@seoul.co.kr
그 속옷 때문에 일이 꼬였다.목욕탕에 아무도 없었던 탓에 곁눈질로 누구를 흉내낼 염의도 없이 나는 팬티를 입은 채 탕 속에 들어가 느긋하게 자세를 잡았다.‘아무렴,그래도 명색이 뼈대 있다는 사대부가(家)의 혈족인데,비록 목간이지만 중인(衆人)이 번잡한 곳에서 어떻게 마지막 의관을 포기할 수 있을까.’ 사단은 그때 벌어졌다.때밀이 겸 관리원이 눈을 부라리며 다가오더니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윽박질렀다.“얌마,탕 속에 ‘빤스’입고 들어가는 놈이 어딨어? 빨리 안 벗어.”
그렇게 세상을 배운 내가 지금은 이렇게 빤질거리는 깍쟁이가 됐다.너무 어쭙잖아서 그게 희망의 여백이기도 했던 소싯적.
문화부 심재억차장 jeshim@seoul.co.kr
2004-08-0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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