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에] 몸살을 앓으며… /박기호 천주교 서울서교동 성당 주임신부

[토요일 아침에] 몸살을 앓으며… /박기호 천주교 서울서교동 성당 주임신부

입력 2004-07-31 00:00
수정 2004-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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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초에 심한 몸살을 앓았다.몸 곳곳이 아프고 머리는 두통으로 갈라지는 듯해서 한없이 괴롭기만 했다.잠들어버리고 싶어도 밤새 잠도 오지 않는 육신의 고통이 어떠한지는 몸살을 앓아본 이만이 알 것이다.이번이 네 번째 몸살이다.그런데 고통스럽게 몸살을 앓으면서도 한편으로 그 몸살을 즐기는 나를 본다.

10여 년 전 첫 몸살을 앓을 때다.좀처럼 병원을 가지 않고 기껏해야 동네 약국 정도 찾던 터라 처음에는 오한으로 시작된 독감인 줄 여겼었다.불덩이 같은 고열과 기침은 창자를 끊어내는 것 같고 뼈 마디마디 살덩이 근육마다 가시로 찌르는 듯 쑤시지 않는 곳이 없는 극심한 고통은 말로 표현할 길 없다.

항복할 무렵에 비로소 그것이 몸살인 것을 알았다.‘몸살을 앓다.’는 말이 과연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3일간의 지독한 몸살이 지나고 난 다음 날,아,그 해방의 아침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눈은 훤하게 밝고 온몸은 날듯이 가볍고 목소리는 우렁차고 마음은 알 수 없는 환희에 넘쳤다.한잔의 생수가 그토록 달고 시원할 수 있는지,하늘은 아름답고 뒷산 숲은 더욱 해맑고 마당에서 만난 교우의 얼굴은 수십 년만에 본 듯이 더욱 반가웠다.담배 생각은 한번도 피워본 적 없는 듯 멀리 달아나 버렸다.살아오면서 그토록 상쾌하고 좋은 기분은 아마 처음인 듯했다.

의학 상식과는 무관할는지 모르나 나름대로 생각으로 몸살이란 뭔가 건전치 못하고 어긋난 생활에서 쌓이고 찌든 몸의 오염물들을 불태워버리고 생기를 살려내는 정화의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몸과 영은 하나이니 몸의 정화는 정신의 정화로 새로운 마음과 기운을 불러옴도 당연하다.그래서 몸살을 앓으면서도 머지않은 약속의 시간에 나타날 생명과 해방의 몸을 기대하는 마음 때문에 약도 먹지 않고 은근히 몸살을 즐기게 되었다.몸져누워 몸살을 앓으며 아,내 생활이 어떻게 무리했고 생명의 질서에서 어긋났었는가? 성찰의 시간으로 삼게 된다.다만 몸살의 주기가 짧아지는 것 같아서 좀 걱정이다.

아무튼 몸살은 바다를 살리는 태풍이요,탄드라의 수행임이 분명하다.몸살로 정화하는 것이 어찌 사람뿐이겠는가? 우리 시대 사회적 갈등과 진통들도 왜곡과 관행과 권위주의로 찌든 사회를 정화 개조하고 시대정신을 세우려는 몸살일 수 있음을 생각한다.서민 경제의 붕괴,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목숨을 앗아 매장한 살인범,주한 미군의 문제,이라크 파병과 김선일 청년의 죽음,서해상의 충돌과 군의 의식문제,송두율 교수와 국가보안법,대통령의 국정 전반에 대한 한나라당의 정체성 시비….

이런 사회적 문제들이 갈등과 진통의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함은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몸살이라고 생각한다.국가의 몸을 정화하는 데 국민과 사회의 몸살은 감당해야 할 대상일 수 있다.

과거에는 사회적 고통의 원인을 국가 시스템의 잘못으로 판단했다.사실이 그랬던 것이다.이제 우리는 국가 제도만이 아니라 구성원 자신들의 아집과 이기주의 역시 불행한 시대의 중심에 있지는 않은지 개혁의 몸살을 통해서 그것을 목도해야 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개혁이란 몸살과 같은 것,항생제나 진통제로 임시처방할 일이 아니다.아직도 개혁은 지속되어야 한다.몸살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겨낸 몸은 건강하다.개혁에 용감한 국민은 건강한 사회를 얻을 것이다.

박기호 천주교 서울서교동 성당 주임신부
2004-07-3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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