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공간] 고속도로 유감/이지누 시인·사진작가

[녹색공간] 고속도로 유감/이지누 시인·사진작가

입력 2004-06-14 00:00
수정 2004-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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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어슴푸레 동살이 비쳐들던 새벽이었다.경기도 이천을 지나자 강릉으로 향하는 길은 한가롭기만 했다.갓 모내기를 마친 논을 살피려 새벽안개 속을 걷고 있는 부지런한 농부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었으며 온갖 새소리로 깨어나기 시작한 산이 내 놓는 맑은 공기는 상쾌하기 짝이 없었다.그러나 청태산 근처를 지날 무렵 평화롭기만 하던 새벽은 풍비박산 나고 나의 미간은 이지러질 대로 이지러져 버렸다.제법 큰 짐승이었던 듯 자동차를 갓길에 세우고 다가가는 동안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었던 까닭은 이미 숨이 끊어진 새끼 고라니가 갈기갈기 찢어진 채 고속도로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피범벅이 되어 두 눈으로 보지 못할 참혹한 지경이 펼쳐진 도로를 걸으며 난감한 마음에 서성대기만 할 뿐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간밤에 벌어진 일인 듯싶었다.고속도로로 끊어진 산의 저편으로 가기 위해 서성거리던 고라니는 불빛에 놀라 멈추어 섰을 테고 자동차는 미처 그를 보지 못하고 지나갔을 것이다.그리고도 무수히 많은 자동차들이 이미 쓰러진 그 앞에 멈추어 서지 못한 채 그를 짓밟고 갔을 것이고,그만큼 그의 몸은 수습 불가능으로 처참하게 산산조각 나 있었던 것이다.

비단 그날 아침의 일만이 아닌 그 모습을 보면서 분노가 치솟았다.그것은 경기도 수원에서 강원도 강릉까지 200km가 넘는 영동고속도로 상에 단 두 곳만 동물이동통로를 만든 도로공사를 향한 것만은 아니었다.오히려 나 자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를 향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그 모든 책임을 도로공사에만 미루어 놓고 마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했다는 식의 회피성 방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기 싶었기 때문이다.산업이 고도로 발달되는 시대에 물류이동과 같은 필요에 의한 도로건설 자체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만드는 일에 대해 보다 현명한 지혜를 짜 내야 하는 일이다.하지만 지금까지는 우리 모두 그것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혹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그저 그것은 나의 일이 아니거니하는 생각은 이제 질책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라.거대한 고속도로 공사에 비하면 알량하기까지 할 동물이동통로라는 것이 어디 동물만을 위한 길인가.분명 그렇지 않다.결국 그것은 사람을 위한 길인 것이다.혹 산길이나 들길을 가다가 야생동물을 본 적이 있는가.다행스럽게도 우연히 동물을 만나 물끄러미 그들이 하는 행동들을 바라 볼 기회가 있었던 사람들은 그 잠깐의 시간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설사 그 상황이 두려움에 이어지는 무서움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더 없이 소중한 경험인 것이다.

더불어 산다는 것이 반드시 사람과 사람간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사람과 사람이 원만하게 더불어 살기 위해 정작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자연이다.그들을 통해 사람은 서정을 가지게 되고 그 서정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 때로는 거칠게 또 부드럽게 작용하는 것 아니겠는가.

촬영이나 답사를 위해 일 년의 반 정도를 도로 위에서 보내는 내가 맞닥뜨리는 도로위의 불행을 이제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한다.여름이 가까워오면서 더욱 더 많은 동물들이 갈 길을 잃고 고속도로 위를 서성일지도 모르니 하물며 개구리 한 마리일지라도 자동차로 치이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그들이 사라지면 우리들 모두가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이지누 시인작가˝
2004-06-1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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