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향토장학금/김인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향토장학금/김인철 논설위원

입력 2004-02-21 00:00
수정 2004-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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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가 거의 유일한 통신수단이던 시절 객지에서 공부하던 자식들은 겉봉에 본가입납(本家入納)이라고 쓴 편지를 고향에 부쳤다.‘부모님 전상서‘로 시작된 편지는 어김없이 ‘다름이 아니옵고’로 이어졌고,마지막에 한 구절 용건을 적었다.한마디로 돈이 떨어졌으니 ‘향토장학금’을 보내달라는 것이다.배고프고 가난하던 그 시절 부모님들은 비록 시래기죽을 끓일망정 교육비만큼은 아끼지 않았다.재산목록 1호인 소를 팔고,그도 모자라면 밭도 논도 팔아 자식들 뒷바라지를 했다.이래서 소무덤이란 뜻의 우골탑(牛骨塔)은 대학의 다른 이름이었고,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우리의 높은 교육열은 바로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향토장학금은 이렇듯 자식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부모의 땀과 눈물,그 자체였다.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안희정씨가 지난 19일 왜 기업인들로부터 돈을 받았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정치인 안희정에게 주는 ‘향토장학금’ 정도로 생각했다.”고 주장했다.안씨는 노무현 대통령이 “오래전부터 나의 동업자이자 동지였다.”고 말한 바 있는,한때 집권여당의 사무총장을 꿈꾸던 386 정치인이다.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국정 전반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던 그가 기업인들에게서 받은 거액의 돈을 눈물의 향토장학금에 비유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무신경한건가,아니면 도덕적 불감증이 극에 달한 결과인가.속담에 상인들은 ‘오리(五厘)를 보고 십리 길을 간다.’고 한다.돈에 관한 장사꾼의 집념을 비유한 말이다.그런 장사꾼들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정치인들에게 거액을 뿌린다니 소도 웃을 말이 아닌가.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국내 정치에 대한 신뢰도는 4.7%에 불과하다.또 다른 조사에서 일반 국민들은 부패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분야로 정치를 꼽았다.이는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우리사회의 불신이 얼마나 뿌리깊은 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그런 정치인들이 기업인들로부터 대가를 요구받지 않고 선의로 거액을 받았다고 정녕 주장한다면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정치인들이여,과연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느냐고.맹자가 말한다.‘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옳음의 시작이다(羞惡之心 義之端也).’ 무릇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여.부끄러움이 무엇인지를 깨우친 뒤 국민 앞에 나서기 바란다.

김인철 논설위원 ickim@˝

2004-02-21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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