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P 유치 할당량 채우기 급급, 계좌수 2배… 수탁고는 줄어
이 행장은 취임 이후 줄곧 ‘강한 은행’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틈만 나면 “올해를 민영화 원년으로 삼겠다”고 외칩니다. 지난해 행장 선출 과정에서부터 그는 “영업력 제고를 통해 민영화 가치를 높이겠다”고 강조했죠. 이 행장 선임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만큼 실적으로 실력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부담감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행장은 올해 15조원의 자산 순증을 목표로 상반기 중 70%를 달성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를 직원들 평가(KPI)에도 반영할 예정입니다.
일선 현장에선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리한 목표치 때문일까요. 내실보다는 할당량 채우기에 급급한 모습입니다. 한 가지 예로 우리은행의 개인형퇴직연금(IRP)은 이 행장 취임 시점이었던 지난해 12월 말 13만 5563좌에서 올해 2월 말 29만 3879좌로 두 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수탁고는 8718억원에서 8440억원으로 되레 줄어들었습니다. 신규 유치한 고객 중 잔고가 하나도 없는 ‘0원 계좌’가 수두룩하다는 얘깁니다. 우리은행의 한 직원은 “이렇게까지 실적을 채워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면서 “이 행장 취임 이후 두 달이 2년처럼 느껴진다”고 피로감을 호소했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새 행장의 등장으로 우리은행 조직에 긴장감이 도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른 경쟁사들도 긴장하는 눈치가 역력합니다. 다만, 외부에서 온 CEO들이 임기 내 실적에 집착하다 조직을 뒷걸음질치게 만들었던 시행착오를 우리는 숱하게 봐 왔습니다. 이 행장은 아직 취임 초기라 이런 우려가 기우일 수도 있겠습니다. 단기 실적보다는 은행을 반석 위에 올릴 백년대계 기초를 닦는 일이 필요합니다. 내부 출신 CEO로서 이에 부응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2015-03-10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