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종이로 만든 마을/윤희상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종이로 만든 마을/윤희상

입력 2019-10-03 17:38
수정 2019-10-04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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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자/자연의 조화
전명자/자연의 조화 90.9×72.7㎝, 캔버스에 오일, 2008
서양화가, 프랑스 국립미술협회 전시회 금상
종이로 만든 마을/윤희상

일찍이 이 마을에는 종이로 만든 하늘이 있었고

종이로 만든 땅이 있었다

종이로 만든 사람들은 종이로 만든 집을 짓고,

종이로 만든 아이를 낳고 살았다

종이로 만든 나무도 있고 종이로 만든 숲도 있었다

당연히 종이로 만든 새도 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더러 종이로 만든 새소리를 들었다

그렇지만 종이로 만든 장애인 학교는 세우지 않았다

종이로 만든 쓰레기 시설을 만드는 것도 싫어했다

종이로 만든 화장터를 짓는 것도 싫어했다

이미 알고 있듯이, 이 마을 사람들은 아프지 않고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결국 죽지도 않았다

***시를 읽는 동안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많이 부끄러웠다. 이 마을 사람들은 종이로 집을 만들고 숲과 새소리와 아이까지 다 만들 수 있었다. 황금만능주의의 세상에서 돈이면 불가능할 것이 없었다. 단지 장애인학교와 쓰레기 처리장과 화장터를 만드는 것은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인류는 왜 태어났을까?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절실하고 절박한 이 화두에 답하는 것,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생을 영위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종이를 거부하자. 진실로 만든 꽃과 바람과 새와 종소리를 사랑하자.

곽재구 시인
2019-10-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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