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 그대로의 서도소리 맥 잇고 싶어”
서울 지하철 5호선 청구역에서 1번 출구로 나와 작은 도로를 따라 쭉 올라간다. 100여m를 걸어가니 빛바랜 노란색 건물 입구에 ‘민속예술관 가례헌’이라는 소박한 간판이 붙어 있다. 미로처럼 나 있는 계단을 오르는 동안 들려오는 것은 신명 난 국악 소리가 아닌, 요란한 재봉틀 소리다. 이런 공장 건물에서 흥겨운 국악 잔치가 열린다니, 영 연상이 안 된다. ‘목요 예술의 밤’ 전단을 확인하고 문을 연 다음에야 “여기로구나.”하고, 옹기종기 모인 100여명의 사람들과 공연을 보고 뒤풀이로 막걸리와 부침개를 먹으면 “이거로구나.”한다.
박정욱 명창
“처음에는 장소도 마땅치 않아서 어디 작은 갤러리 하나 빌려서 했고, 모인 사람들도 20~30명 정도였어요. 지금은 이렇게 버젓하게 나름의 공간도 있고, 보러 오시고 도움까지 주시는 분들이 생겼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가례헌’을 운영하는 소리꾼 박정욱(44·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의 목소리는 ‘국악 사랑방’이라고 불리는 그곳만큼 친근감이 뚝뚝 떨어진다.
‘목요 예술의 밤’의 역사는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클래식 분야에서는 익숙한 ‘하우스콘서트’ 형식으로 국악을 보여 주자는 야심으로 시작했다. 장소도 여의치 않고 예산도 별로 없어서 거의 반기별로 한번 열었다가 2006년에야 지금의 모양새를 갖추고, 이제 100회를 훌쩍 넘겼다.
“104회였던 지난 3일에는 스승 이은관 선생을 모셨어요. 아흔셋에 저런 쩌렁한 소리가 어찌나 존경스럽던지…. 게다가 늘 ‘너희 선생 김정연’이라고 하시던 스승님이 그날에서야 ‘내 소리를 제대로 하고 있구나.’라는 말씀을 해주시는데 너무 행복했죠.”
●김정연·이은관 명창에게 서도소리 배워
이런 말에는 사연이 있다. 박정욱은 평안도, 황해도 지역에서 전승된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이수자이다. 이후 서도소리 여류 명창이던 김정연(1913~1987년)에게 1980년대 초반부터 소리를 배웠다. 그가 세상을 뜬 뒤 박정욱은 서도소리를 대표하는 배뱅이굿의 일인자인 이은관 명창에게 배우고자 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에서 “여류 명창에게 배웠으니 당연히 여류 명창의 문하로 들어가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원칙을 내세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서도소리는 분단이라는 한국의 지역적 상황으로 대표작이 별로 알려지지 않아 전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게 우리들의 고민”이라는 박정욱은 “그날 스승님께 ‘제대로 한다.’는 말씀을 들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냐.”며 여전히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가례헌의 목표가 비로소 실현된 듯한 말이기도 하다. 전통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끼고, 서도소리의 맥을 그대로 보여 주자는, 존재의 이유이다.
“소리가 많이 변질됐어요. 일단 가장 큰 문제가 무형문화재 전수 제도인데, 무형문화재 보유자의 많은 제자 중 실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보유 자격을 주는 게 아니라 무조건 첫째가 후계자가 되는 형식이죠. 첫째 실력이 스승만 못하면 소리는 이미 원래의 그것이 아닌 거예요. 이미 많은 전통문화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죠.” 소위 ‘장자제도’의 문제점이다.
원래 서도소리의 요성법은 ‘심하게 요동치듯 음을 떠는’ 형식인데, 어느 때부턴가 ‘콧소리를 내며 탈탈 터는’ 식이 됐다. 또 ‘수심가’도 잦은 한숨을 쉬며 부르는 게 특징인데, 이것을 “고령의 스승이 숨이 모자라 한숨이 많아진 것일 뿐”이라고 설명하며 본질이 흐려졌다.
“후계자들이 스승에게 배운 대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하는 방식으로 가르치니 문화 전승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이제 초기 모습을 간직한 많은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하나둘 세상을 뜨고 계시니 더욱 곤란한 상황인 거죠. 문화재 심사제도가 현실을 반영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우선 스승의 업적 정리하는 일부터
제도적 문제에 대한 생각은 많지만 그는 “지금 할 일은 따로 있다.”고 못을 박는다. 우선 스승의 업적을 정리하는 일이다. “서도소리의 뿌리였던 김 선생의 업적도 정리되지 않았고, 유품도 고작 30여점밖에 남아 있지 않아요. 또 다른 스승인 이 명창이 걸어온 길도 그렇게 허무하게 잊혀지게 할 수 없죠. 어른들의 것을 그대로 남기고,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끼면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전통예술을 하는 우리의 일입니다.”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2009-09-1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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