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미국) 박건형특파원|“어제 대두가 큰 폭으로 상승한 데 반해, 옥수수 선물은 보합세를 보였습니다. 올해 수확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시장에서는 가격 폭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고층건물이 즐비한 시카고 금융가 입구에 자리잡은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앞 광장. 평일 오전 9시가 되면 이곳에서는 MSNBC, 블룸버그 등 세계적인 통신사 기자들이 줄을 서서 리포트를 하는 광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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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1000조 달러어치가 거래되는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1000여명의 중개인들이 모여 곡물 거래를 하고 있다. 최근 곡물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식량가격이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사진 왼쪽), 1930년 개장한 세계 최대의 곡물거래시장 시카고상품거래소의 외관. 시카고 박건형특파원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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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1000조 달러어치가 거래되는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1000여명의 중개인들이 모여 곡물 거래를 하고 있다. 최근 곡물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식량가격이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사진 왼쪽), 1930년 개장한 세계 최대의 곡물거래시장 시카고상품거래소의 외관. 시카고 박건형특파원 kitsch@seoul.co.kr
긴박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달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시카고상업거래소(CME), 뉴욕상업거래소(NYMEX)와 함께 세계 경제 흐름을 결정짓는 CBOT의 위상을 느낄 수 있다.
5대 호(湖)에 인접하고 비옥한 농토의 중심지인 시카고는 1800년대 초반부터 곡물 터미널의 역할을 했다. 거래가 늘어나자 수요와 공급, 운송, 저장 등의 문제점들이 드러났고 혼란 해결을 위해 1848년 82명의 상인들이 모여 CBOT를 출범시켰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상품을 사고 판다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오늘날 증권시장, 선물시장의 원조다.“CBOT의 역사가 바로 현대 경제의 역사”라는 홍보담당 메리 하펜버그 이사의 말에는 자부심이 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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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액 108경(京)원, 세계 경제 움직인다
“공정성을 유지해야 하는 거래소의 특성상 향후 시장 전망을 내놓을 수는 없지만 전문가들은 곡물시장이 지난 60년 이래 최고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봅니다.” 전 세계적인 식량난을 취재하러 왔다는 기자의 말에 하펜버그 이사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위기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CBOT 3층에 위치한 거래장. 곳곳에 자리잡은 8각형의 거래대마다 초록, 파랑, 노랑 등 형형색색의 재킷을 입은 거래인들이 수십명씩 모여 있었다. 기묘한 수신호가 쉴 새 없이 오가고 찢어진 종이가 날아다니는 거래소안은 거래인들이 지르는 고성으로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손가락을 꼬는 방식인 거래인들의 손짓으로 한번에 수십만 달러에서 수백만 달러의 상품이 오간다. 축구장 크기인 CBOT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종류는 밀·옥수수·대두 등 곡식과 원유·에탄올 등 원자재, 각종 채권, 금융상품 등 30가지에 달한다.
상품담당 유태석 이사는 “CBOT와 CME를 합친 CME그룹은 2006년 기준으로 연간 거래건수 22억건, 계약 성사 액수는 1000조 달러(약 108경원)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거래소 확대 이면엔 식량가 폭등 있어
CME그룹은 올해 150년이 넘는 역사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2006년 그룹 이사회가 의결한 CME와 CBOT합병이 5월 마무리됐고,8월에는 NYMEX를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했다. 미국내 모든 파생상품·현물 거래의 98%를 차지하는 거대 공룡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로버트 레이 수석부회장은 “거래소의 거대화는 원유를 비롯한 에너지와 식량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미래에 대한 불안은 곧바로 상품 선점을 통한 미래 투자로 이어진다.”면서 “이같은 시장 불안정성은 선물과 파생상품 위주의 거래소로 이뤄진 CME그룹측에는 시장 확대의 기회”라고 밝혔다.
전세계 식량과 에너지 가격의 결정 주체인 거래인들의 입을 통해서도 시장의 불안정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년째 CBOT에서 일하고 있는 마틴 포그는 “최근 3년간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으로 식량 수확량이 줄어들었다.”면서 “올해 밀 재고량은 3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그는 “수요는 계속 늘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곡물 재고량이 올 들어 30∼35% 줄어들었기 때문에 곡물값이 급등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사료·연료로 쓰이는 곡물↑식량난 부채질
지난해 거래인 자격을 취득한 리처드 트로스크레어는 “대부분의 거래인들은 중국과 인도의 급성장이 가격 폭등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 “일반적으로 육류 섭취가 늘면 곡물소비가 줄어든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소나 돼지 사료로 쓰이는 곡물 수요가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전체 대두 가운데 바이오 연료용 대두가 30%에 육박하고 있는 만큼 이같은 구조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지 않는 이상 곡물가격 안정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kitsch@seoul.co.kr
2008-09-01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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