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어웨이 프롬 허’

[새영화] ‘어웨이 프롬 허’

정서린 기자
입력 2008-03-22 00:00
수정 2008-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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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숙명은 ‘짓무른 눈´이다. 상한 눈자위에는 늘 핏발이 서 있고 눈가는 눈물로 젖어 있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다.‘어웨이 프롬 허´의 남편 그랜트(고든 핀센트)의 눈은 내내 짓물러 있다. 그의 눈은 이제 이런 얘기를 들려줄 참이다. 의지로 낙관할 수 없는 게 인생이라고. 무력함은 대응의 또 다른 방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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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웨이 프롬 허´(Away from her·27일 개봉)에는 44년을 함께 한 노부부가 등장한다. 보잘 것 없는 농담과 소박한 식사, 서로의 어깨에 기대 책을 읽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노년이다. 그러나 갓 구운 빵의 속살 같은 안온한 일상에 균열이 간다. 아내 피오나(줄리 크리스티)가 치매에 걸린 것. 홀로 스키를 타다 기억을 잃어 집을 못 찾게 된 피오나. 은발이 성성하지만 아직도 장난기로 가득한 아내는 웃음을 지우고 말한다.“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여보.”남편은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고 아내를 요양원으로 데려간다.

요양원에는 규칙이 있다.30일간 가족면회 금지. 적응기를 두기 위해서다. 한달 뒤 수선화를 품에 안고 찾은 남편. 그러나 아내의 곁에는 옛 기억이 씻겨 나가고 새 기억이 자라 있다. 요양원의 다른 노인 오브리와 단짝이 된 것이다. 둘을 떼어 놓으려 그랜트는 오브리의 아내를 찾아가고, 사랑을 잃은(?) 피오나는 삶의 의욕을 놓아 버린다.

이제 선택할 때다. 이럴 때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되돌려야 할까. 현재의 기억을 ‘선물´해야 할까.‘어웨이 프롬 허´가 수작이 된 것은 이 갈래길에서 남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목놓아 우는 대신, 말간 얼굴을 내보인다. 치밀어 오른 눈물 자국은 남아 있지만, 그 얼굴에서 보게 되는 희생과 헌신의 흔적은 둔중한 진동으로 가슴을 울린다. 그 담담함과 성숙함으로 영화는 평단의 마음을 얻었다. 이 어른스러운 영화의 감독은 올해 스물 아홉으로 첫 연출 데뷔한 사라 폴리. 아역 배우 출신인 폴리는 원경에서도 주인공의 막막한 심리를 잡아 내는 연출력을 구사했다.

닥터 지바고의 여인 ‘라라´였던 줄리 크리스티는 아름답고 정갈한 노년으로 올해 각종 시상식의 여우주연상을 독점했다. 골든 글로브, 미국배우조합 등이 그를 올해의 여배우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립스틱을 바른 입술은 입체적이고 콧대에 여전히 선명하다. 온화한 노부인과 치매로 오락가락하는 환자가 모두 한 얼굴에서 나온다.

모든 순간이 소중했던 사랑이, 과연 모든 게 사실이었나 허무해질 때. 영화는 묻는다. 당신은 상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인지. 상대를 위한다는 ‘진심´으로 자신을 배반하는 선택을 할 것인지. 쉽지 않아서 더 숭고한 선택이다.12세 이상 관람가.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2008-03-2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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