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풍운동 안마사들이 털어놓는 구풍
지난 2일 하오 2시. 춘천(春川)시 우두동 맹아학교 운동장에 100여명의 군중들이 몰려 들었다. 추운 날씨에도 한결같이 철잃은 「선·글라스」차림. 『축첩풍조 일소하고 알맞게 낳아 행복하게 기르자』는 별스런 구호를 채택한 이 모임은 사상 최초의 맹인 신풍운동 궐기대회였는데, 향락만을 위해 살았다는 그들의 생활습관을 살펴보면-.10년전 집단 정착한 이후 자포자기로 방탕한 생활
①구걸행각을 함으로써 우리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말자 ②우리도 떳떳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참정권을 올바르게 행사하자 ③모든 힘을 밝은 사회발전에 기여, 국가의 은혜에 보답하자.
지난 2일 하오 2시 춘천시 우두동 맹아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맹인대회」의 신풍운동 행동강령이다.
이날 모인 장님들은 우두동에 집단정착한 맹인 40여가구와 시내 교동 산5의11 가구 가장들과 가족들. 서울에서 격려차 행차한 맹인VIP(귀빈)의 축사도 있었다.
이들은 10년전 춘천시당국의 배려로 이곳에 집단 정착한 이후 시에서 내주는 생활보호자 구호양곡을 타먹으며 지내오던 장님들.
이 가운데 10여명은 안마사 점장이로 만만찮은 수입을 올리고 있으나 낭비벽이 심해 깨진독에 물붓기식, 날이새면 언제나처럼 빈털터리긴 마찬가지다. 모두가 흙벽돌에 「루핑」을 얹은 연립식주택에 1가구가 방 한개씩을 차지하고 도덕율이고 윤리관이고는 모두 내팽개친채 본능에 의한 생존만을 만끽해오던 장님들.
『눈먼 병신이 무슨 낙으로 살겠느냐』는 자포자기가 이들을 더욱 방탕한 생활로 이끌었다.
비바람 가려줄 움막에 헐벗지 않고 하루 밥 세끼만 먹으면 족하다는 것이 이들의 생활신조. 게다가 또 일생을 밤에만 사니까(?) 느느니 자식들뿐. 재산은 모아 무엇하며 본능을 억제해가며 살필요도 없다는 식으로 살아왔지만 정착한 이후 현재까지 자녀들의 장래가 큰 문젯거리로 「클로스·업」됐다.
『떠돌아 다닐때는 아이들을 낳아 끌고다니다 젖떨어지면 제각기 흩어지게 마련이었기 때문에 자식에 대한 정도 없이 우라질 씨나 많이 뿌리자는 생각으로 많이 낳았는데 이제부터는 가족계획을 꼭 실천해야겠어요』
현재 아들 셋, 딸 둘의 자녀들과 한방에서 살고있다는 김경조씨(49·가명)의 말이다.
눈뜬 소실 2,3명씩 두고 돈벌면 그자리서 써버려
또 지금까지는 식구가 늘어난다고 그만큼 생활이 쪼들리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수 대로 구호양곡이 나오니까 결국 누구나 제 먹을 복은 제가 타고 나오기 마련이라는 운명론적 생활관으로 되기 꼭 좋았다.
밤이면 춘천시내 여관 문전마다 장님안마사들의 피리소리가 처량하게 울려퍼진다.
그러다가 안마를 요구하는 손님방에 들어가 안마를 한다. 이들이 받는 보수는 5백원, 후한 사람은 2천원도 준다. 재수좋은 날은 하룻저녁 벌이가 2~3천원씩 된다. 물론 공치는 날도 많지만 이들은 이 돈을 집에 가져가는 날이 드물다.
시내에는 눈뜬 소실들이 2~3명씩 있다는 것. 그래서 돈을 모아봐야 눈뜬 사람들 좋은일 시키는 것. 따라서 벌면 그자리에서 쓰게되고 쓸 곳은 여자밖에 더 있었겠냐는 것. 이들이 필요한 것은 안마하러 나들이할때 입을 옷만 반드르르하면 그만.
가구나 살림도구 같은것도 필요없다. 방안에는 몇년을 묵었는지 이불이 때와 어린이들의 오줌으로 빨갛게 찌든채 항상 방바닥을 덮고있다.
이 가운데 여자안마사가 4명. 이들이 겪는 시련은 남자들보다 몇배 크다. 남자손님들은 처음에는 여우처럼 달래다가 늑대로 변하고 사자가 되어 결국 요구를 안 들어주면 호통쳐 내쫓기 일쑤.
이럴때면 돈은 고사하고 엉겹결에 쫓겨나와 앞못보는 제설움에 한없이 울어버린다고.
그러나 남자들에게는 뜻밖의 「찬스」도 많다는 것.
『여자손님 방에 들어가면 은근히 유혹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때는 어쩔수없지 않겠어요』
이들 대부분이 지체높은 집 과부거나 바람기 많은 유부녀들이 후환없는 장님들을 찾아 안마를 핑계로 욕망을 채운다고 이모(51) 안마사는 귀띔.
이들의 집단마을에는 아직 어린 소경이 하나도 없다. 자식들은 모두가 눈을 뜬 똘똘한 어린이. 이 아이들 때문에 취할때가 되면 해마다 장님들과 동회직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다. 나이찬 어린이들을 취학시키려고 보면 입적안된 어린이들이 대부분. 동회직원이 추궁하면 『눈먼 놈이 모두 남의 손을 빌어야 하는데 귀찮게 무슨 호적이냐』고 오히려 호통을 치기 일쑤였다.
세상의 불신임도 높지만 단결하여 공동축사 마련
『맘껏 향락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고 또 그것이 우리의 생할철학』이라는 정모장님(37)은 『우리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지만 어차피 투표를 해도 대리투표인데 대리인이 엉뚱한데 찍고 시키는대로 했다면 그만이지 별수있느냐』며 지금까지 속아만 살아왔기때문에 불신풍조가 깊숙이 도사리고 있다고 개탄. 동회에서구호양곡지급에 필요한 도장을 맡겨두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두 내외가 지팡이에 의지한채 저녁때면 안마손님을 찾아 여관행차를 하는 강명구(康明求·46)·이순자(李順子·26)부부는 앞으로 동료들을 설득, 공동축사를 만들어 닭, 돼지도 기르고 어린이들도 중학에 보내겠다고 부푼 꿈을 키우면서도 『옛날에도 눈감으면 코베간다고 했는데 요즘같은 세상에 감은 눈쯤 빼가기 예사아니겠느냐』면서 체념이 앞선다고.
그러나 『우리의 단결력은 대단합니다. 앞못보는 병신끼리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야지 뿔뿔이 헤어지면 더욱 멸시를 받지않겠어요』라고 말한다.
이들은 협회서 전화를 달기위해 전화청약을 했다. 이 전화가 개통되면 안마도 주문에 의해 나가게되고 좀더 생활도 규칙적일 것이라고 벌써부터 기대에 차있다.
<춘천=김선중(金瑄中)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3월 21일호 제4권 11호 통권 제 1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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