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감독의 영화들에는 그만의 아우라가 분명하다. 웬만한 영화적 감식안만 있다면 사전정보 없이도 이내 그의 작품을 짚어낼 수 있도록 곳곳에 ‘장진 스타일’을 매복시켜 놓는 일관된 재주를 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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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선보이는 ‘거룩한 계보’(제작 KnJ엔터테인먼트)는 사뭇 다르다. 언어유희에 가깝게 대사 자체를 코믹하게 비트는 장기나 익살은 한눈에도 많이 자제된 느낌이다. 액션 누아르 장르를 표방한 새 영화에 우정을 주제어로 심어놓은 감독은,‘최소한’의 유머로 균형을 살려 그로서는 ‘최대한’ 진중하게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영화 ‘친구’가 부산사투리로 우정의 점성을 결정적으로 더했다면 이 영화에서는 질펀한 호남사투리가 등장인물들의 유대관계를 상징하는 직설적 은유장치가 됐다. 이렇다할 반전장치 없이 단선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구도 역시 이전의 장진 방식과는 차이가 좀 있다.
어릴적 단짝친구였다가 나란히 같은 폭력조직에 몸담게 된 세 친구가 조직의 배신과 음모를 뚫고 우정을 확인해 나가는 줄거리. 보스의 적을 찌르고 수감된 동치성(정재영)은 교도소에서 단짝친구 순탄(류승룡)을 만나고, 자신들을 제거하려는 보스의 음모를 알아챈 뒤 탈옥해 복수를 벼른다. 보스의 새 오른팔이 된 친구 주중(정준호)과의 대결이 불가피하고 영화는 이 과정에서 의리와 우정이라는 누아르의 고전적 메시지를 집중 부각시킨다.
감독의 특장이 엿보이는 대목은 치성과 순탄 일행이 무너진 담벼락을 넘어 탈옥하기까지의 코미디 라인에 있다. 감방지하의 터널을 뚫어 탈옥을 시도하다가 여의치 않자 온몸으로 부딪쳐 담벼락을 금가게 하는(추락하는 비행기 잔해에 어이없이 벽이 무너진다.) 등의 상황은 넉살이 빛나는 조폭코미디의 시퀀스가 됐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최대장점은, 단순한 조폭코미디처럼 출발했다가 갱스터+액션+누아르로 장르를 포섭해 나가는 ‘장르 백화점’의 오지랖에 있다.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친구’(후반부의 어릴적 회상장면들은 심하게 오버랩된다.)를 비롯한 조폭액션물들의 익숙한 재미를 요령껏 답습한 듯 진부한 맛의 한계가 분명하다.
감독 장진에 대한 신뢰만으로 영화를 선택하는 팬이라면, 다음 작품에서는 감독이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주길 기다리게 될지도 모르겠다.15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2006-10-1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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