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572)-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8)

儒林(572)-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8)

입력 2006-03-31 00:00
수정 2006-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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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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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네는 신기하게 생각하고 노끈을 잡아당겼는데, 끈은 대나무통과 이어져 있었고 그 대나무통은 과거시험장인 성균관의 반수당(泮水堂)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미리 반수당 담장의 밑을 파 지하도를 만들고 대나무통이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도록 터널을 파 놓은 것이었다.

시험장 안에서 통 속에 시험문제를 넣어 신호를 보내면 담 밖에 있던 자가 줄을 당겨 시험문제를 확보하여 답안지를 작성한 후 다시 노끈에 묶어 들여보낸 것이었다. 조사를 했으나 범인은 잡을 수 없었다고 실록은 기록하고 있는데, 어쨌든 과거시험이 열렸던 반수당은 바로 율곡이 별시를 보던 바로 그 자리.

이런 첨단 기술의 부정방법은 그 당시에도 대리시험을 봐주는 전문가가 있었다는 산 증거이며, 실제로 거벽(巨擘)이라 불리는 전문적으로 과거답안지를 대신 지어주는 전문가가 있었으며, 또한 사수(寫手)라고 불리는, 글씨를 대신 써 주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균관에서 유생들만 모여서 치르는 별시문과는 다른 과거와는 달리 오직 응시자만 출입할 수 있었으므로 자연 일일이 신분을 확인하며 당사자만 과장 안에 들이는 저승사자, 수협관의 감시가 그만큼 엄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협관은 한사람씩 몸을 더듬어 일일이 확인하였다. 거자들이 들고 갈 수 있는 허락된 문방구는 오직 시지라 불리는 종이와 붓, 그리고 벼루와 먹뿐이었다.

과거시험을 치를 때는 따로 문제를 인쇄한 답지를 나눠주지 않았으므로 거자들은 각자 별도의 종이를 마련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세도 있는 명문가의 자제들은 은밀히 복중(腹中)에 적서(積書)를 몰래 감추고 들어가거나 노골적으로 행담(行擔) 속에 자신들이 보던 책들을 넣어 들어가곤 하였다.

‘행담’이란 싸리나 버들로 만든 작은 상자로 책가방과 같은 것인데, 이 가방 속에 자신이 읽던 책이나 예상답안지를 미리 넣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법은 가장 고전적인 커닝 방법으로, 이를 ‘협서(挾書)’라고 하였다.

이수광(李光)이 지은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법이 해이해져서 과장에 드러내놓고 책을 갖고 들어가 과거장이 마치 책가게와도 같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특히 과장의 법이 극도로 문란해진 것은 임진왜란 이후부터였고, 율곡의 시대에는 비교적 공정하고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족벌과 파벌에 의한 부정행위가 난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협관은 한사람씩 수색하여 과장 안으로 들여보냈는데, 율곡은 순서가 다 되어도 입장할 수가 없었다.

주인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선접꾼들이 눈을 부라리고 서서 행여 율곡이 조금이라도 먼저 안으로 들어가는가를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막대기와 말뚝을 손에 세워 들고 서서 여차하면 당장이라도 태질을 할 듯 잔뜩 벼르고 서 있었다.

그 순간.

시종여일 침착한 태도를 보이고 서 있던 율곡이 갑자기 뚜벅뚜벅 부문을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2006-03-3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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