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425)-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1)

儒林(425)-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1)

입력 2005-09-05 00:00
수정 2005-09-05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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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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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311년.

맹자는 마침내 고향인 추나라로 돌아온다.

이때 맹자의 나이는 61세.(맹자의 생년월일은 분명치 않다.BC 373년 4월 2일생이라는 설도 있고,BC 385년이라는 설도 있고,BC 372년이라는 설도 있다. 여기서는 가장 보편적으로 인용되는 372년으로 통일하려 한다.)

38세 무렵에 주유천하를 시작하였으므로 맹자는 거의 2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이후 BC289년 83세에 숨을 거둘 때까지 맹자는 또다시 고향을 떠난 적이 없었다. 오직 고향에서 제자들과 더불어 책을 저술하고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사기에도 이 무렵의 맹자를 ‘물러와서 제자만장들과 시경, 서경 등을 강술하고 공자의 뜻한 바를 펴서 맹자7편을 저술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후한 때의 학자 조기(趙岐)는 맹자보다 400여년 후대의 유학자인데, 그는 ‘맹자제사(孟子題辭)’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물러나 평소에 제자들과 논의한 것을 모아 공손추, 만장 등의 뛰어난 제자들에게 주고 잘못된 것은 비판하고, 의문이 나는 것은 질문하게 하였으며, 법도의 말을 스스로 골라 7편을 저술하였다.”

이상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맹자는 20여년에 걸친 주유열국에서 돌아와 고향에서 죽을 때까지 책을 저술했으며, 그 일에는 맹자의 뛰어난 제자인 만장과 공손추가 참여했음이 밝혀진다. 특히 ‘맹자’는 문체의 기백이 호탕하고, 문맥이 일관되며, 사상의 전후가 일치되는 것으로 이는 선진(先秦)시기의 문헌으로는 거의 유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청대의 고증학자 최술(崔述)이 ‘맹자사실록(孟子事實錄)’에서 ‘맹자는 맹자의 제자 만장, 공손추 등이 과거의 것을 기억하여 저술한 것이다. 그래서 두 제자의 문답이 7편 중에 유독 많으며, 두 제자는 이 책에서 자(子)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라고 서술함으로써 뛰어난 제자 만장과 공손추의 영향에 힘입은 바 크다고 설명하고 있다.

맹자는 주유열국에서 돌아온 후 세상을 버리고 은둔하였다. 마치 스승 공자가 68세 때 13년간의 천하주유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6년 동안 학문에만 정진하였던 것처럼.

공자와 맹자는 이처럼 비슷한 생애를 보냈지만 어떤 면에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공자의 말년은 제자들의 교육에 힘쓰는 한편 만인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시(詩), 서(書), 역(易), 예(禮), 악(樂), 춘추(春秋) 등 육경의 경서를 편찬하였다.

공자는 실제로 정치를 통하여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킬 수 없는 현실상황을 직시하며 그 이상의 실현을 후대에 기대하기 위해서 교육과 만인의 교과서인 경전에 몰두하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는 ‘위대한 교육자’라고 부를 만하다.

‘이상의 실현을 후대에 기대’한 공자의 예감대로 유가를 계승한 맹자는 공자의 왕도정치를 현실에 접목시키려고 천하를 주유한다.

‘원하는 것은 오직 공자를 배우는 것(願則學孔子也)’이라고 선언한 자신의 말처럼 맹자는 공자의 뒤를 좇아 유가의 바통을 쥐고 계주(繼走)를 벌였던 릴레이 주자였던 것이다.
2005-09-0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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