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작품을 심사숙고해 고르기보단, 인간관계에 기반해 작품을 선택해 왔다는 배우 정준호(35). 딱 부러지게 거절 못하는 성격 때문에 가끔은 뒤돌아서서 후회하기도 했던 사람 좋은 배우 정준호가, 이번만큼은 ‘배우’로서 욕심을 냈다. 이미 내정된 배우가 있었음에도 졸라서 기어이 맡아내고야 말았다는 영화 ‘역전의 명수’의 현수와 명수역. 그 같으면서도 다른 쌍둥이 형제에 도전하는 정준호는,‘공공의 적2’의 악역 연기에 이어 배우로서 훌쩍 성장해 있었다.
●현수와 명수, 같으면서도 다른 두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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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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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법대 출신으로 출세에 눈먼 동생 현수와, 현수의 뒤처리만 하다가 인생이 꼬여버린 형 명수. 완전히 다른 성격이지만 전형적인 ‘착한놈’과 ‘나쁜놈’의 대립구조는 아니다. 한 프레임 안에 나란히 있는 현수와 명수는 놀랄 정도로 다르지만, 각각 연기하는 모습 속에는 두 사람이 서로 조금씩 겹쳐진다. 지적인 냉혈한과 정많은 바보라는 상투적인 전형성을 탈피한 자연스러운 그의 연기덕에, 두 캐릭터는 영화적인 설정 안에서도 현실성을 띠게 됐다.“선악을 명확히 가르기보단 중간을 지향하고 절제를 좋아하는 감독의 영향이 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도 촬영 내내 두 캐릭터를 오가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그.“지금 명수를 찍는 건가 현수를 찍는 건가 헷갈릴 정도로 뒤죽박죽된 적도 많았죠. 전에 찍었던 테이프를 돌려보면서 감정선을 이으려고 노력했어요.” 혼자서 두 배역을 맡다보니 거의 매 신에 등장하며 녹초가 될 때에는 “나랑 똑같은 사람이 대신 촬영 좀 해줬으면….”하는 생각도 했단다.
그렇다면 어떤 연기가 더 어려웠을까.“단순한 성격이지만 명수가 더 어렵고 또 그만큼 애착이 갔습니다. 당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영화적인 인물이에요.” 하지만 “야망을 이루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는 현수도 이해가 간다.”는 그. 아마도 명수와 현수는 정준호의 내면에서 건져올린 두 가지 모습 아닐까.
●밝고 재밌는 모습부터 선굵은 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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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연기영역이 워낙 광범위하다 보니 다양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우선 명수의 트레이드 마크는 국밥 쟁반을 머리 위에 인 모습. 어떻게 자연스럽게 쟁반을 이고 돌아다니게 됐을까. 그는 촬영이 없을 때도 틈틈이 역 앞에서 국밥 올린 쟁반을 이고 다니며 연습을 했다. 심지어 영화촬영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언제 국밥집 차렸어요?”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고.“뛰어다니는 것까지 해보려고 했는데 그건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릇도 많이 깨먹었어요.”
한 프레임 안에서 명수와 현수가 마주보고 말하는 장면은 어떻게 연출된 걸까. 현수 대역 앞에서 명수가 돼 연기를 하고, 다시 자리를 바꿔 명수 대역 앞에서 현수 연기를 했단다. 그리고 각각의 대역은 컴퓨터그래픽을 거쳐 현수와 명수로 탄생했다.
‘가문의 영광’에 이어 서울대 법대 출신을 두번이나 맡게 된 소감도 궁금했다.“사적인 자리에서 서울대 출신들이 제게 명예졸업생이라고 해요.” 실제로 부모님의 권유로 공무원이 되려고 고시를 준비한 적도 있었다는 그는, 여러모로 서울대생과 닮은 것 같다며 웃었다.
이번 영화가 14번째. 아직도 하고 싶은 역할이 남았을까.“영화 ‘데드맨 워킹’이나 ‘필라델피아’처럼 내면 심리를 섬세하게 그린 영화를 해보고 싶습니다.” 차기작은 오는 여름 방영할 TV 드라마 ‘루루공주’. 김정은과 함께 출연하는 로맨틱 코미디물로,6년 만의 안방극장 복귀다. 영화는 올해말 ‘두사부일체’의 속편인 ‘투사부일체’를 촬영한 뒤, 내년쯤 느와르 장르에서 선굵은 연기에 도전할 생각이다.
■좋은사람 있으면 꼬옥 소개시켜줘
젊을 때야 하나의 목표를 향해 열정을 불태우겠지만, 나이가 하나둘 먹다 보면 그 열정의 불꽃은 사그러들고 그 너머의 삶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정준호의 나이가 딱 그렇다. 이젠 배우로서의 꿈과 열정을 키우기보다는 다른 삶들을 돌아보고 챙겨볼 때다.
“제 인생에서 중요한 건 영화가 아니에요. 배우로서의 인기와 영화의 흥행에 쫓겨산다면 제 인생이 얼마나 비참해지겠습니까. 이제 배우는 제 직업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가 요즘 가장 중요시하는 건 ‘사람’이다.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사람만은 잃어버리지 말자.”는 게 그의 신조. 그래서 어느 누구보다 사람들을 챙기고 ‘휴먼 네트워크’를 돈독히 쌓아가고 있다. 봉사활동도 열심이고, 영화제작과 호텔 경영 등 사업에도 발을 담갔다.
가장 부러운 건 애 키우면서 오순도순 사는 친구들 모습이란다.“돈, 인기가 많으면 얼마나 많겠어요. 빨리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내년을 결혼하는 해로 정했다는 정준호. 누구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주자.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2005-04-1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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