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 내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퇴계의 ‘진실된 인연’에 얽힌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내 막연한 예감은 이처럼 우연치 않게 적중된 것이다.
두향, 조남두의 시 구절대로라면 두향은 이곳 출신의 기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양은 색향으로 유명하지 않은 한갓 벽촌에 불과한 곳. 명기들의 배출지로는 서울, 평양, 선천, 해주, 강계, 함흥, 진주, 전주, 경주 등이 손꼽히고 있다. 따라서 두향은 미색이 뛰어난 기생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해어화(解語花).
예부터 기생은 ‘말하는 꽃’으로 불려왔다. 어쩌면 두향은 미색으로 뛰어난 기생이 아니라 이퇴계와 말이 잘 통하는 해어화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담배를 피워 물으며 생각하였다.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퇴계와 두향에 얽힌 사연을 추적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난감한 느낌이었다. 그때 문득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광장에 서 있는 서너 대의 택시였다. 역 앞에 놓인 시비에 두향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면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두향의 이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며, 오래전 이퇴계와 두향과의 인연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택시 운전사라면 남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 것이며 두향의 연고지에 대해서도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는 황급히 담배를 눌러 끄고 택시 쪽으로 걸어갔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내가 고개를 숙여 말하자 운전사는 손을 올려 차창을 열었다.
“저 혹시 두향이를 아세요.”
질문을 하면서도 나는 순간 내가 터무니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향이라요.”
운전사는 자신이 잘못 듣기라도 한 듯 한손을 들어 바람소리를 막으며 되물었다.
“기생 두향이 말입니다.”
내가 다시 대답하자 그제서야 운전사의 얼굴에서 화색이 돌았다.
“아 옛날 기생 두향이 말씀이신가요. 이퇴계 선생하고 사랑놀이를 하던.”
나는 옳다 됐구나 하여서 머리를 끄덕였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해마다 5월 단오날이면 기생 두향을 위해 ‘두향제’란 마을축제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두향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특히 지리적 여건에 밝은 택시 운전사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 두향의 뭘 알고 싶은가요.”
운전사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기생 두향과 관계가 있는 연고지 같은 게 없습니까.”
내가 묻자 운전사는 한심한 듯 나를 보며 말하였다.
“이보시오. 두향이는 500년 전 사람인데 무슨 연고지가 남아 있겠소이까. 두향이의 무덤이라면 몰라도.”
운전사는 혀를 차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는데, 순간 나는 잘못 들었는가 하고 귀를 의심하였다.
―두향의 무덤이라니. 그렇다면 두향의 무덤이 오늘날 남아 있다는 말인가.
나는 믿기지 않은 얼굴로 운전사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지요. 두향의 무덤이라고 말했나요.”
2005-02-0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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