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명물 중 하나인 중구 보수동 헌책방… 부산의 명물 중 하나인 중구 보수동 헌책방 골목 전경.50~70년대만 하더라도 부산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곳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성을 날렸으나 최근 들어 대형서점 등에 밀려 날로 그 명성이 퇴색돼 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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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명물 중 하나인 중구 보수동 헌책방…
부산의 명물 중 하나인 중구 보수동 헌책방 골목 전경.50~70년대만 하더라도 부산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곳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성을 날렸으나 최근 들어 대형서점 등에 밀려 날로 그 명성이 퇴색돼 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 주고 있다.
한참 실랑이 끝에 사람 좋아보이는 헌책방 주인은 까까머리 중학생에게 선심쓰듯 새것과 다름없는 ‘영한사전’을 건넨다.“공부 열심히 하라!”는 당부의 말과 함께.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50∼70년대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치고 중구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한 번쯤 기웃거리지 않은 사람이 없을 터이다.
요즘에야 지천에 깔려 있는 게 서점인 데다 인터넷 서점까지 있어 집안에서도 원하는 책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학생들에게는 이곳 헌책방 골목이 값싸면서도 질좋은 책을 구할 수 있는 요람이자 도서관이었다.
이곳에는 초·중·고등학교 교과서부터 참고서,소설책,위인 전집류,동화책,육법전서,잡지,각종 전문서적,고서적 등 웬만한 서적은 다 갖춰 놓았기에 이곳에 오면 자신이 원하는 책을 비교적 싼값에 챙길 수 있었던 것.
진흙 속에서 보석을 캐듯 자신에게 필요한 책을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이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은 국제시장 입구 대청로 사거리 건너 보수동 쪽으로 난 사선방향의 좁은 골목길에 자리잡고 있다.
5평 남짓한 공간부터 60여평 크기로 동서로 족히 150여m가량 늘어서 있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이 탄생한 것은 1950년 초로 당시 미군들이 보던 헌 잡지와 학생들의 헌 참고서 등을 끌어모아 파는 헌책방 4곳이 생긴 것이 그 시초였다고 한다.
그러다 6·25전쟁으로 부산에 각 대학의 분교가 들어서고 피란민들이 넘쳐나면서 책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또 당시 가까운 곳인 영도에 연세대 캠퍼스와 인근 보수동,대신동에도 고교 분교와 학교가 여럿 있어 학생들이 이곳을 많이 이용했다.
당시 피란민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피란 때 가져온 고급서적과 희귀본을 내다 팔았으며,학생들은 이곳에서 헌책을 구입,공부를 했다.
이처럼 수요와 공급이 늘어나자 헌책방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한창 전성기 때는 그 규모가 70여곳에 이르렀다.더러 귀중한 옛 책이 파묻혀 있기도 해서 나이 지긋한 학자들이며 학생들이 많이 찾아 들어 눈독을 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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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옛 책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새책을 팔기 시작했다.
이곳 터줏대감인 김종필(67·함일서점)씨는 “엿장수에게서 산 ‘일본골동대사전’이란 책을 고서적상에 팔아 횡재를 하기도 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나 이곳도 세월의 무게는 견딜 수 없었는지 지금은 50여곳 만이 성업중이며 그 명성이 날로 퇴색돼 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그나마 이들 서점 중 절반 정도는 헌책이 아닌 신간서적을 취급하고 있다.
한창 전성기에는 하루 3000여명의 고객이 찾아들었지만 지금은 채 600명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가게 앞에는 ‘헌책삽니다’라는 입간판 대신 ‘신간입하’라는 간판이 더욱 많이 눈에 띄고 좌판에는 각종 패션잡지와 신간 수험서가 가득하다.
학창시절 때부터 이곳을 자주 찾았다는 김영한(48·교사)씨는 “참고서를 사면서 서점주인에게 깎아달라고 떼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헌책방 골목의 명성이 갈수록 퇴색되고 있어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20여년 전 우연히 이곳에 생계의 터전을 잡았다는 현우서점 주인 김인조(55)씨는 “당시만 하더라도 자식들 키우고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해 왔는데 IMF체제 이후 갈수록 영업이 힘들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곳에서도 불황을 탈출하고 옛 명성을 되살리기 위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책방 주인들이 상가 번영회를 만들고,하나 둘 사라져 가는 책방을 살리기 위해 지난 96년부터 보수동 책방골목축제와 헌책방사진전시회 등을 개최하고 있으며 앞으로 각종 공연도 열 계획이다.
상가번영회 양수성(31·고서점운영) 총무는 “인터넷에 보수동 책방골목을 알리는 홈페이지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
2004-06-1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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