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질풍경초

[씨줄날줄] 질풍경초

염주영 기자 기자
입력 2003-10-14 00:00
수정 2003-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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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액션 영화에서 주인공이 깎아지른 절벽에서 추락하다가 튀어나온 돌부리를 붙잡고 살아 남는 장면을 가끔 본다.이런 장면들은 관객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영화 속에서 꾸며낸 얘기라고 생각하기 쉽다.체중에 가속도까지 붙어 추락하는 몸을 지탱하려면 초인적인 힘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인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의 근육은 위기에 처했을 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고 한다.사람은 위기가 닥쳤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순간적으로 힘을 한 곳에 모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일종의 ‘자동 위기대응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이 시스템은 위기를 민첩하게 감지하는 능력과,제 때에 힘을 집중하는 능력에 따라 개인차가 있다는 것이다.그래서 사람은 위기가 닥쳐야 진가를 알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으로 정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김진표 경제 부총리가 직원들에게 ‘질풍경초론(疾風勁草論)’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질풍경초’는 ‘질풍에도 흔들리지 않는억센 풀’이란 뜻이다. 지금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경제를 책임진 재경부가 엘리트 집단답게 흔들림 없이 제 능력을 발휘해 달라는 당부다.

중국 후한서의 유수와 왕패의 고사에 ‘질풍지경초’라는 대목이 나온다.한조의 일족인 유수는 황제의 외척인 왕망이 나라를 빼앗아 신나라를 세우자 반기를 들고 군사를 일으켜 1만 군사로 왕망의 40만 대군과 싸운다.이때 그를 따르던 십여명의 장수 가운데 모두 도망치고 왕패라는 장수만이 최후까지 버텨 승리한다.이에 유수가 왕패의 용기에 감읍해 “나를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는데 오직 그대만이 남아서 힘쓰고 있으니 ‘세찬 바람이 불어야 억센풀을 알아볼 수 있구려.’(疾風知勁草)”라고 한데서 유래된 말이다.

참여정부가 출범 8개월도 안돼 노대통령이 스스로 국민에게 재신임을 물어야 할 만큼 국정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노사불안과 신용불량자 문제에다 집값 폭등까지 겹쳐 경제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총체적인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탈출구는 없는가.모진 바람이 불 때라야 강한 풀을 분별할 수 있다.이 어려운 시기에 경제정책의 산실인 재경부가 흔들림 없이 경제를 바로 세워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염주영 논설위원
2003-10-1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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