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산다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에너지를 소비하는 과정이라면 죽음은 곧 에너지의 고갈을 의미한다.
특히 사람처럼 빠른 속도로 에너지를 소비하는 유기체는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인체라는 기관을 빠르게 마모시킨다.결국 유기체는 에너지를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고,그 과정에서 유기체의 마모도가 높아지며,마침내는 감당할 수 없는 피로를 쌓아 죽음에 이르는 병을 부르게 된다는 이 가설은 아직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적어도 인체라는 유기체가 무한정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거나,유기체를 전혀 손상시키지 않고 에너지를 소모할 수 있다는 또다른 가설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이런 관점에서,생명에너지는 유한한 만큼 가능한 과소비하지 말고 유기체의 훼손을 막아야 하며,그렇게 해서 더 건강하게,더 오래 살 수 있다는 요지를 담은 잉에 호프만의 책 ‘오래 살려면 게으름을 피워라’(이영희 옮김,나무생각,8900원)는 확실히 ‘평범한 비범’을 담고 있다.
과학저널리스트로,이전에도 이미게으름의 효용성을 주창한 바 있는 작자 호프만은 “생물학적 게으름이란 유기체,즉 몸을 조심해서 다루고 도우며,무리한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전제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절대로 일하지 말라.”고 주문한다.매사에 너무 쉽게 움직이다가는 긴급 상황을 위해 마련돼 있는 생체에너지가 바닥나 곧 탈진에 이르고 만다는 것이다.
호프만의 ‘게으름론’은 사실,게으름에 대한 선동이라기보다는 너무 바쁘고,너무 빠르고,너무 강한 것에 대한 비판적 경고라는 편이 옳다.그는 “이런 숨막히는 상황에서 인체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사회나 직장에서 무슨 과제가 주어졌을 때 “강인한 의지력으로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일하라.”는 강요야말로 생명의 탈진을 부추기는 악의의 모럴이라고 비판한다.
이 쯤에서 많은 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그렇게 살아서야 어떻게 이 심각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라고.그러나 그렇든 말든 그는 진지하고 태평하게 “선택은 당신의 몫”이라며 이렇게 말한다.“현대적인 기술이 당신의 바이오프로그램을 과속으로 운전하도록 방치하지 마라.당신의 삶은 당신 스스로 프로그래밍해야 한다.”
책을 읽고 나면 느끼겠지만,그의 게으름론은 결코 대책없는 선동이 아니다.오히려 차분하고 냉정해 게으름에 특별한 혐오감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생명의 담론’이다.그만큼 과학적이고 구체적이다.예컨대,간을 위한 게으름은 과도한 지방과 알코올의 섭취를 제한하는 것이며,혈관과 근육을 위한 게으름은 운동,인체의 면역체계를 위한 게으름은 유해성분을 피하고 신체를 단련시키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답안을 제시한다.
이쯤 되면 그가 말하는 게으름이 꼼짝하지 않고 눈만 끔벅이는 부동(不動)자세나 의욕상실의 지경이 아님을 어렵잖게 알 수 있다.오히려 그는 생물학적 이기주의자가 되라고 권고한다.스트레스를 피해 생체에너지의 무의미한 낭비를 차단하되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게 할 일은 다하라는 충고다.
마지막으로 호프만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잠언같은 건강론-“잊지 마라.생명에너지의 탱크는 한번 탕진되면 끝이다.다시는 빈 탱크를 채울 수 없다.”
심재억기자 jeshim@
특히 사람처럼 빠른 속도로 에너지를 소비하는 유기체는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인체라는 기관을 빠르게 마모시킨다.결국 유기체는 에너지를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고,그 과정에서 유기체의 마모도가 높아지며,마침내는 감당할 수 없는 피로를 쌓아 죽음에 이르는 병을 부르게 된다는 이 가설은 아직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적어도 인체라는 유기체가 무한정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거나,유기체를 전혀 손상시키지 않고 에너지를 소모할 수 있다는 또다른 가설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이런 관점에서,생명에너지는 유한한 만큼 가능한 과소비하지 말고 유기체의 훼손을 막아야 하며,그렇게 해서 더 건강하게,더 오래 살 수 있다는 요지를 담은 잉에 호프만의 책 ‘오래 살려면 게으름을 피워라’(이영희 옮김,나무생각,8900원)는 확실히 ‘평범한 비범’을 담고 있다.
과학저널리스트로,이전에도 이미게으름의 효용성을 주창한 바 있는 작자 호프만은 “생물학적 게으름이란 유기체,즉 몸을 조심해서 다루고 도우며,무리한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전제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절대로 일하지 말라.”고 주문한다.매사에 너무 쉽게 움직이다가는 긴급 상황을 위해 마련돼 있는 생체에너지가 바닥나 곧 탈진에 이르고 만다는 것이다.
호프만의 ‘게으름론’은 사실,게으름에 대한 선동이라기보다는 너무 바쁘고,너무 빠르고,너무 강한 것에 대한 비판적 경고라는 편이 옳다.그는 “이런 숨막히는 상황에서 인체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사회나 직장에서 무슨 과제가 주어졌을 때 “강인한 의지력으로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일하라.”는 강요야말로 생명의 탈진을 부추기는 악의의 모럴이라고 비판한다.
이 쯤에서 많은 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그렇게 살아서야 어떻게 이 심각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라고.그러나 그렇든 말든 그는 진지하고 태평하게 “선택은 당신의 몫”이라며 이렇게 말한다.“현대적인 기술이 당신의 바이오프로그램을 과속으로 운전하도록 방치하지 마라.당신의 삶은 당신 스스로 프로그래밍해야 한다.”
책을 읽고 나면 느끼겠지만,그의 게으름론은 결코 대책없는 선동이 아니다.오히려 차분하고 냉정해 게으름에 특별한 혐오감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생명의 담론’이다.그만큼 과학적이고 구체적이다.예컨대,간을 위한 게으름은 과도한 지방과 알코올의 섭취를 제한하는 것이며,혈관과 근육을 위한 게으름은 운동,인체의 면역체계를 위한 게으름은 유해성분을 피하고 신체를 단련시키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답안을 제시한다.
이쯤 되면 그가 말하는 게으름이 꼼짝하지 않고 눈만 끔벅이는 부동(不動)자세나 의욕상실의 지경이 아님을 어렵잖게 알 수 있다.오히려 그는 생물학적 이기주의자가 되라고 권고한다.스트레스를 피해 생체에너지의 무의미한 낭비를 차단하되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게 할 일은 다하라는 충고다.
마지막으로 호프만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잠언같은 건강론-“잊지 마라.생명에너지의 탱크는 한번 탕진되면 끝이다.다시는 빈 탱크를 채울 수 없다.”
심재억기자 jeshim@
2003-09-18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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