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가 궁해진 할리우드에 세계적 인기를 누린 TV시리즈야말로 더없이 먹음직한 요릿감이다.인기 TV시리즈를 스크린으로 옮긴 화제작 2편이 간판을 건다.27일 전세계 동시개봉하는 ‘미녀 삼총사-맥시멈 스피드’(Charlie’s angels-Full throttle)와 새달 4일 개봉하는 ‘헐크’(The Hulk).같은 액션장르를 빌렸지만 감상포인트는 완전히 다르다.경쾌한 폭소탄을 내장한 ‘미녀 삼총사’가 도시락이라면,유전자 변형을 SF블록버스터로 이야기하는 ‘헐크’는 대형 뷔페다.
잇속에 빠른 할리우드가 ‘웬만해선 흥행을 막을 수 없는’ 주인공을 스크린으로 불러세웠다.화가 치밀면 몸집이 이스트빵처럼 부풀어오르는 괴물인간 헐크.만화 마니아들에겐 ‘고전’ 이상의 ‘바이블’이었으며,TV시리즈를 보며 자란 30대 이상에겐 거부할 수 없는 ‘추억’이다.
영화 ‘헐크’는 외피부터 얘깃거리가 되는 대목이 많다.40년이나 해묵은 만화캐릭터에 새삼 눈을 돌린 할리우드의 기획도 그렇지만,연출자가 ‘와호장룡’의 이안 감독이란 사실이 특히 그렇다.영화라는 새로운 장르에서 감독의 잠재력이 얼마나 만족스럽게 발현되는지 지켜볼 기회다.
할리우드의 막강자본(제작비 1억 20000만달러)으로 부활한 헐크는 외형상으로는 SF액션 블록버스터다.그러나 정작 감독이 선택한 시나리오는 아버지와 아들이 엮는 가족비극사다.억압된 인간의 본능과 다중성에 초점을 맞춘 만화 원작이나 TV시리즈와 차별화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간인 동시에 괴물인 주인공은 캐릭터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극적이다.어려서 부모를 잃은 생명공학 박사인 브루스 배너(에릭 바나)는 실험실에서 우연히 감마선을 쐰 뒤부터 묘한 신체징후를 느낀다.그 무렵 실험실의 수위인 데이비드 배너(닉 놀테)가 자신이 친아버지이며 곧 브루스의 몸 속에서 스스로 통제하지 못할 괴반응이 일어날 거라고 예고한다.
도입부에서 영화는,정부가 인간유전자 조작을 금지하자 태어날 아들을 실험대상으로 삼는 젊은 시절의 데이비드를 회상화면으로 친절히 보여준다.감독은 스케일만으로 승부를 걸기보다는 돌이킬 수 없이 꼬인 부자관계를 통해 관객의 감정선을 건드리고자 했다.아버지의 그릇된 야욕으로 슬픈 운명을 띠고 태어난 브루스가 어쩔 수 없이 거대괴물이 되고 마는 모습에선 ‘스케일’보다는 ‘비극’의 정서가 먼저 엿보인다.
익히 아는 줄거리이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영화 속 영웅의 새로운 면모 때문이다.헐크는 국가나 세계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웅이 아니라 권력자들의 음모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고,동료이자 애인인 베티(제니퍼 코널리)를 구하기 위해 싸우는 어쩌면 ‘반영웅’이다.
심리스릴러를 방불케 하는 닉 놀테의 사이코 연기가 영화의 규모를 세워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아들을 이용해 절대권력을 얻으려 음모를 꾸미는 산발한 머리의 닉 놀테가 없었다면 어땠을까.3D애니메이션처럼 매끈히 다듬어지는 헐크의 변신과정 말고는 이렇다하게 기억될 장면이 없을지도 모른다.
SF액션 블록버스트의 공식을 고민 없이 베낀 대목들은 아쉽다.긴급사태가 터졌다며 휴가 중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건다거나,통제실 부스에서 시시각각 진압명령이 이어지는 등 질리도록 봐온 화면에선 맥이빠질 법하다.할리우드 최고의 시각효과팀인 ILM이 공을 지나치게 들인 탓일까.거대한 봉제인형처럼 붕붕 튀어오르는 헐크의 뒷모습은 초록괴물 슈렉 같아 실소가 터진다.상영시간 2시간16분.
황수정기자 sjh@
잇속에 빠른 할리우드가 ‘웬만해선 흥행을 막을 수 없는’ 주인공을 스크린으로 불러세웠다.화가 치밀면 몸집이 이스트빵처럼 부풀어오르는 괴물인간 헐크.만화 마니아들에겐 ‘고전’ 이상의 ‘바이블’이었으며,TV시리즈를 보며 자란 30대 이상에겐 거부할 수 없는 ‘추억’이다.
영화 ‘헐크’는 외피부터 얘깃거리가 되는 대목이 많다.40년이나 해묵은 만화캐릭터에 새삼 눈을 돌린 할리우드의 기획도 그렇지만,연출자가 ‘와호장룡’의 이안 감독이란 사실이 특히 그렇다.영화라는 새로운 장르에서 감독의 잠재력이 얼마나 만족스럽게 발현되는지 지켜볼 기회다.
할리우드의 막강자본(제작비 1억 20000만달러)으로 부활한 헐크는 외형상으로는 SF액션 블록버스터다.그러나 정작 감독이 선택한 시나리오는 아버지와 아들이 엮는 가족비극사다.억압된 인간의 본능과 다중성에 초점을 맞춘 만화 원작이나 TV시리즈와 차별화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간인 동시에 괴물인 주인공은 캐릭터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극적이다.어려서 부모를 잃은 생명공학 박사인 브루스 배너(에릭 바나)는 실험실에서 우연히 감마선을 쐰 뒤부터 묘한 신체징후를 느낀다.그 무렵 실험실의 수위인 데이비드 배너(닉 놀테)가 자신이 친아버지이며 곧 브루스의 몸 속에서 스스로 통제하지 못할 괴반응이 일어날 거라고 예고한다.
도입부에서 영화는,정부가 인간유전자 조작을 금지하자 태어날 아들을 실험대상으로 삼는 젊은 시절의 데이비드를 회상화면으로 친절히 보여준다.감독은 스케일만으로 승부를 걸기보다는 돌이킬 수 없이 꼬인 부자관계를 통해 관객의 감정선을 건드리고자 했다.아버지의 그릇된 야욕으로 슬픈 운명을 띠고 태어난 브루스가 어쩔 수 없이 거대괴물이 되고 마는 모습에선 ‘스케일’보다는 ‘비극’의 정서가 먼저 엿보인다.
익히 아는 줄거리이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영화 속 영웅의 새로운 면모 때문이다.헐크는 국가나 세계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웅이 아니라 권력자들의 음모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고,동료이자 애인인 베티(제니퍼 코널리)를 구하기 위해 싸우는 어쩌면 ‘반영웅’이다.
심리스릴러를 방불케 하는 닉 놀테의 사이코 연기가 영화의 규모를 세워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아들을 이용해 절대권력을 얻으려 음모를 꾸미는 산발한 머리의 닉 놀테가 없었다면 어땠을까.3D애니메이션처럼 매끈히 다듬어지는 헐크의 변신과정 말고는 이렇다하게 기억될 장면이 없을지도 모른다.
SF액션 블록버스트의 공식을 고민 없이 베낀 대목들은 아쉽다.긴급사태가 터졌다며 휴가 중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건다거나,통제실 부스에서 시시각각 진압명령이 이어지는 등 질리도록 봐온 화면에선 맥이빠질 법하다.할리우드 최고의 시각효과팀인 ILM이 공을 지나치게 들인 탓일까.거대한 봉제인형처럼 붕붕 튀어오르는 헐크의 뒷모습은 초록괴물 슈렉 같아 실소가 터진다.상영시간 2시간16분.
황수정기자 sjh@
2003-06-27 2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