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형 칼럼] 신당, 헷갈리지 않으려면

[이경형 칼럼] 신당, 헷갈리지 않으려면

이경형 기자 기자
입력 2003-05-29 00:00
수정 2003-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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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부 정치’아닌 국민정당을 대통령 전면 등장 처방아니다

민주당 신·구 주류가 신당 창당을 싸고 갈등하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은 27일 저녁 취임 후 처음으로 민주당 소속 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치,만찬을 베풀었다.

이날 만찬 자리에서 의원들은 노 대통령에게 많은 쓴소리를 했다.어떤 이는 “우리 당이 대통령을 배출했으면 대통령이 정치 전면에 당당히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고,또 어떤 이는 “지금 대통령과 우리가 같은 당인가.”라고 묻기도 했다.

이들은 각각 표현의 강도는 다르지만 대통령이 당의 혼란에 적극 개입해 ‘교통정리’를 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셈이다.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집권당이 두 쪽 날 지경인데,대통령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당정 분리의 원칙만 외고 있으니 답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통령의 당 전면 등장을 요청하는 의원들의 의식 속에는 ‘제왕적 총재’에 대한 향수가 깔려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체질화된 정당 문화와 지향해야 할 정당·정치 개혁 간에 큰 괴리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의원들은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을 통해 흐트러진 당의 전열을 일거에 정비하고,내년 4월 총선을 향해 똘똘 뭉쳐 매진하기를 염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무현 정권의 출범은 군사 정권과는 또 다른 문민 대통령에 의한 권위주의 정치,제왕적 총재에 의한 보스 정치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다.그것은 새로운 한국정치의 가능성을 여는 큰 전환점으로 기대되고 있다.

역대 정권이 그랬듯이 대통령이 집권당 총재를 맡아 친정(親政)하여 당을 일사불란하게 운영하면 당 소속 의원들은 편할 것이다.그러나 그 폐해가 얼마나 컸던가.‘하문(下問)정치’‘당총재의 낙점식 공천’‘하향식 당론 지상주의’가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지금 신당 논란으로 혼돈 상태에 빠진 민주당을 구하는 길을 당정분리의 후퇴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노 대통령이 당 전면에 나선다면 우선은 ‘해열 진통’의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이는 한국 정당정치를 또다시 퇴영적으로 내모는 일이 될 것이다.

민주당은 현 사태에 대한 진단을 잘 해야 한다.지금 국회는 3김 정치의 지역할거주의에 의해 구성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민주당이 통합신당으로 가든지,‘따로 신당’으로 가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년에 출범할 17대 국회를 어떻게 구성하는 것이 한국의 당면 문제를 푸는 데 가장 효과적인 의회 모델이 될 것인가에 논의의 초점을 두어야 한다.새 국회가 또다시 지역주의 정당으로 구성된다면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게 된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겪고있는 세대간·계층간·지역간·이념간 갈등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조정하고,이를 생산적으로 통합해나가느냐가 신당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신당 논의가 기껏 인적 청산이니 하는 ‘살생부 정치’ 수준에서 맴돈다면 이는 신당 논의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꿴 것이다.‘PK(부산 경남 울산)신당’을 발진시키기 위해 ‘호남당’의 상징 인물들을 찍어내야 한다는 발상도 유치하기는 마찬 가지다.

지금이라도 신당 논의는 개혁과 사회통합을 실현하는 방법론에서 찾아야 한다.예를 들어 국민 정당을 지향하되 계층적 이념적 노선의 강조점을 설정하고,동시에 새로 적용될가능성이 큰 1인2표제 투표 방식,지역 구도를 깨는 비례대표 의석의 구성 방법,향후 여야선거법 협상에서 논의해야 할 정치 발전방향 등의 변수를 함께 고려하는 신당 논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이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는 당정 분리는 결코 민주당의 발전이나 신당 논의를 옭아매는 족쇄가 아니다.당정분리 원칙은 내년 총선 결과와 관계없이 국정 운영을 행정부 대 입법부로 끌고가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것이란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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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장 khlee@
2003-05-2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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