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식에서 자유로워진 나 사물의 본색 되찾으려는 시도”/ 소설집 ‘사람의 향기’ 낸 화제의 작가 송기원

“자의식에서 자유로워진 나 사물의 본색 되찾으려는 시도”/ 소설집 ‘사람의 향기’ 낸 화제의 작가 송기원

입력 2003-04-23 00:00
수정 2003-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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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집에 묶인 일련의 단편들은 가까스로 자의식에서 자유로워진 내가 비로소 사물들 본래의 빛깔을 되찾으려는 몹시 조심스러운 시도인지도 모른다.”(274쪽)

시와 소설에 모두 능한 재능있는 작가,민주화를 외쳤던 문인,퇴폐적 유미주의자,5년 동안 구도를 위한 히말라야·계룡산 등의 여행….다양한 화제로 문단에 숱한 ‘안주거리’를 제공해온 송기원이 네번째 소설집 ‘사람의 향기’(창작과비평사)를 내놓았다.

매 순간 치열하게 삶 혹은 문학의 본질을 찾으려고 애썼던 그가 이번 작품에 담은 시선은 의외로 차분하다.

작가 스스로도 그 동안의 방랑이 ‘자의식’을 벗어나기 위한 통과의례였으며,그 문학적 결실이 ‘사람의 향기’라고 설명한다.

“나이 쉰 살이 넘어서야 겨우 자의식을 넘어” 빚어낸 등장인물들에는 그의 말대로 다양한 숨결이 녹아 있다.

‘양순이 누님’을 비롯, 9개 단편에서 작가는 가족 혹은 고향 사람들의 을씨년스러운 삶을 비추며 그들의 아픔을 예의 걸쭉한 입심으로 어루만지고 있다.그에 힘입어 작중 인물들은 자유롭게 살아 숨쉬면서 저마다 ‘향기’를 피운다.비록 하나같이 상처투성이의 무지렁이들이지만 작가의 삶보다 더 인간다운 모습으로 빛난다.

태어나자 마자 좌익 아버지가 죽어 억척 같은 어머니의 보호 아래 살아가는 정박아 막둥이(‘바보 막둥이’),병에 걸려 모든 게 먹을 것으로 보이는 성관이(‘물총새 성관이’),굳세게 세파를 헤쳐가면서도 착한 마음을 잃지 않는 억척어멈(‘헤조갈래’),문둥이 딸이라는 비밀을 숨기고 살아온 정애(‘정애 이야기’) 등이 신산한 삶의 주인공들이다.

이들 곁에 등장하는 화자인 ‘나’에는 작가의 삶이 오롯이 투영되고 있다.작가는 이 화자의 입과 기억을 빌려서 고향 사람을 떠올리고 그 속에 묻어 있는 가슴 아린 사연들을 불러낸다.

특히 ‘폰개 성’의 화자인 ‘나’가 걷는 길은 송기원 삶의 축소판이다.어린시절부터 등단 시절,자유실천 문인선언에 우연히 참가했다가 시인 고은 조태일 이시영,소설가 박태순 이문구 등과 함께 경찰에 끌려간 장면,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수감된 시절 등은 송기원의 땀내음이 그대로 배어 있다.

또 “사생아에다 시골장터의 가난한 장돌뱅이 출신이라는 삶의 조건”에 눌려 지내느라 “내일이니,희망이니,은총이니,박하향기니”라는 말을 제일 싫어하며 자기혐오에 빠진 모습(‘바보 막둥이’)과 사생아로 태어나 힘들 때마다 무작정 울기만 하는 외사촌형의 삶(‘울보 유생이’)도 작가의 체험이 촘촘히 스며들어 있다.

이런 상처투성이의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면서 작품집을 이루고 있다.송기원은 이들을 통해 자신의 문학을 기름지게 하고 그 자신도 가파르게 넘어온 우리 시대의 한 단면을 되살려내고 있다.

이종수기자 vielee@
2003-04-2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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