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통신] 전대완 駐태국 공사

[외교관 통신] 전대완 駐태국 공사

전대완 기자 기자
입력 2003-03-17 00:00
수정 2003-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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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와 해외를 오간 세월도 20년이 훌쩍 넘었다.그런데,왕을 왕같이 모시고 사는 나라는 태국이 처음이다.오늘 같은 대명천지에 ‘고리짝 같은’ 왕인가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금방 깨달았다.들여다 보면 볼수록 왕의 존재,왕가의 역할이 충분하게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아하,이렇게 해서도 사회가,국가가 성립될 수 있구나 싶고,그런 만큼 감탄이 절로 난다.

태국 왕실은 국민적 존경과 사랑을 향유하고 있다.일반적으로는 왕실부터 봉건·전제적 지배에 강한 미련을 갖기에 국가 근대화에 장애가 되기 십상인데,태국 왕실은 오히려 근대화를 주도했다.서양의 선진 문화와 문명을 받아들이고자 왕실이 먼저 해외유학에 나섰고 엘리트층에게도 널리 권장했다.

국민들은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독립과 주권을 보전할 수 있었다는 데 무한한 자긍심을 느끼며,그 만큼이나 왕실에 대한 신임도 두터워질 수밖에 없다.물론,이제는 왕이 절대적 권력을 휘두를 수가 없다.1932년 청년장교와 관료를 중심으로 일어난 민주개혁 쿠데타로 입헌군주제가 도입됐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왕의 권위는 날로 하늘을 찌르고 있다.

쿠데타 세력이 왕의 지지를 못 받으면 쿠데타 자체가 무산될 정도다.왕이 총리를 불러 앉혀 놓고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훈계를 한다.이런 권위는 어떻게 나올까.바로 왕이 나라 경영에 알게 모르게 구심역할을 하고,국민을 위해 부단히 봉사하는 까닭이다.

현 푸미폰 국왕,라마 9세는 1967년 이래 외국방문을 일체 중단하고 농촌복지사업 등,국민후생 향상에 온 마음을 바치고 있다.끊임없이 농촌지역을 방문한다.홍수 방지,조림,식수 확보,수자원오염 방지,유전자변형(GMO)식품에 대한 경각심 고양 등,어렵고 가려운 부분에 해결책을 제시한다.

정부에다 그 해결을 위임하는 게 아니다.왕가가 직접 사업을 펼치고 선도한다.크고 작은 이런 사업이 2000개가 넘는다.사업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정부에 넘긴다.국왕뿐만 아니다.전통 실크산업 육성은 왕비가,비행 간호단 운영은 왕의 누나가 하고 있다.소수민족 보호와 교육사업은 이미 타계한 왕의 모친과 부친이 했고,지금도 왕실에서 하고있다.모양만 내는 게 아니다.실제 땀흘리며 현장에 임한다.진실은 알려지게 마련,국민들이 따르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하겠다.

태국은 얼핏,날씨는 더워 짜증만 나고 거리에는 환락이 넘치며,국민은 느릿느릿 긴장감이 없어 보인다.정부는 연신 바뀌어 리더십이 약한 것은 아닌지,사회는 잘 견디어 나갈까 하는 의문을 한두 번은 갖게 마련이다.

그러나 천만의,만만의 의문이다.왕과 왕실이 나서서 국가중심을 위에서부터 반듯하게 잡고,국민은 절대적인 불교신앙으로 아래에서부터 흔들림이 없으며,지도층은 국제화되고 실질을 숭상하는 두터운 전문인력으로 중간에서 기둥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때때로 국왕은 국민이,또는 정부가 뒷심 부족하다 싶으면 ‘귀한 말씀’을 내리곤 한다.정부와 국민은 귀담아 듣고 마음에 담는다.이 얼마나 좋은 화음인가.우리 사회에도 이렇게 정신적으로 군림하는 존재가 있었으면 싶다.

●전대완(全大完·49)공사 약력 서울대 불문학과,외시 12회,핀란드 2등서기관,러시아 1등서기관,동구2과장,중구과장,뉴욕부총영사
2003-03-17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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