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태어나도 소설을 쓸 것이다.” 우리 문단의 큰 버팀돌인 조정래는 소설가로서의 자부를 이렇게 말하곤 한다.
‘태백산맥’을 거쳐 ‘아리랑’과 ‘한강’ 등 한국 근·현대를 꿰뚫는 문학사적 기념비를 세운 그가 문단에 발을 디딘 뒤 33년만에 첫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문학동네)를 펴냈다. 책에는 그의 문학관은 물론 사상과 이념,더 나아가 개인·가족사 이야기가 빼곡하게 들어차, 도저하고 치열한 ‘조정래 문학’의 발원을 찾아가는 긴장과 흥분을 주기에 족하다. 다시 태어나도 소설가이고 싶다는 그의 말은 이렇게 이어져 왔다.“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에게 묻고는 했다.당신은 사상적으로, 성분적으로 무슨 주의자냐고.굳이 그렇게 분류하고 싶다면,정의와 진실을 실현시키고자 하니까 진보주의자고,민족적 자존을 지키고자 하니까 민족주의자고,그 어떤 간섭이나 억압 없이 예술창작을 하고자 하니까 자유주의자이다.”
그의 역저 ‘태백산맥’ 이후 우리 사회 일각에서 그를 향해 뱉어낸 색깔시비는 그의 지칠줄 모르는 창작열에적잖은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그런 아픔을 겪은 대가(大家)는 “아니다.그렇지 않다.”고 의연하고도 처절하게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스스로 진보와 민족·자유를 거론한 그는 “그러나 이런 분류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문학을 섬기며 남은 생애를 흠없이 살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라는 소박하면서도 초연한 속내를 고백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작품 전편을 통해 ‘삶에 뿌리 박은 민중성’을 줄기차게 파헤쳐 왔다.이런 의식 속에는 ‘역사란 민중이 그들의 피와 땀으로 엮어 가는 것’이라는 인식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그 자신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로 상징되는 한국 현대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민중이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박정희를 떠올린다.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어리석음이고 비극이다.”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그에게 “이문열씨는 우파를,조정래씨는 좌파를 대표한다고 했는데 이런 일각의 평가에 동의하느냐.”고 물었다.이념적으로 경직된 우리 사회의 이분법적 사고관행을 드러내는 이 촌스러운 질문에 그는“정치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좌파라고 한다면 나는 거부한다.그러나 개혁 진보를 지지하는 입장의 좌파라는 것에는 동의한다.”고 스스로 이념적 갈래를 정리했다.
그가 ‘태백산맥’을 통해,냉전시대의 반공논리에 세뇌된 사회에는 ‘악령’이나 다름없는 빨치산을 두고,‘그들도 인간이었다.’고 외치고 나서자 일각에서는 그의 출생 전력까지 들추며 ‘빨갱이를 미화했다.’고 문제삼고 들었다.그러나 그는 흔들림없이 입장을 지켜냈다.
“당시 빨치산의 다수는 농민이었고,그들은 생산물의 칠팔할을 빼앗겨 보리죽으로 연명한 이들이었다.결국 그들이 바라는 것은 사람답게 사는 것이었다.”며 “식량이 부족해 수많은 사람들이 병들고 죽어가는 지금의 북한을 보면 빨치산들이 저 세상에서 통곡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치열한 그의 문학적 이념세계는 그래도 세간에 토막토막 알려졌으나 하나뿐인 아들과 손자 얘기 등 개인사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책에는 그와 절친한 가수 조영남과 관련한 이런 일화도 담겨 있다.조씨가 부인 윤여정과 헤어질 무렵의 일이다.“그가 이혼을 앞두고 우리 집에 와 있으면서 윤씨와 전화로 재산에 관한 논의를 하기에 내가 ‘당신은 또 벌 수 있으니 다 주라.’고 조언했다.자식을 그쪽에서 키우니 아무말 말고 다 주라고 했다.그가 ‘차도 줘야 하냐.’고 물어서 ‘차는 너의 발이니까 차만 빼놓고 다주라.’고 했다.”며 그것이 조씨에게 한 유일한 충고였다고 술회했다. 모두 8부로 구성된 책은 오늘의 세태를 그의 시각에서 관찰하고 평가한 ‘어지러운 바람’을 비롯,‘작가의 편지’ ‘왜 문학을 하는가’ ‘문학의 그림자’와 문학취재기인 ‘길과 함께한 생각들’을 실어 문학으로 일가를 이룬 그의 진면목을 원형대로 살필 수 있도록 꾸며졌다.
이 시대를 사는 문학인답게 그는 ‘세상과 문학의 가벼움’에 대해서도 그의 말을 전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세상이 가벼워지는 것은 1980년대의 치열성과 엄숙성에서 소외됐던 사람들의 반발에서 비롯됐다고 본다.그러나 문인들이 그것에 부화뇌동하고 편승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그것은 참다운 문인의 길이 아니다.”
심재억기자 jeshim@
‘태백산맥’을 거쳐 ‘아리랑’과 ‘한강’ 등 한국 근·현대를 꿰뚫는 문학사적 기념비를 세운 그가 문단에 발을 디딘 뒤 33년만에 첫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문학동네)를 펴냈다. 책에는 그의 문학관은 물론 사상과 이념,더 나아가 개인·가족사 이야기가 빼곡하게 들어차, 도저하고 치열한 ‘조정래 문학’의 발원을 찾아가는 긴장과 흥분을 주기에 족하다. 다시 태어나도 소설가이고 싶다는 그의 말은 이렇게 이어져 왔다.“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에게 묻고는 했다.당신은 사상적으로, 성분적으로 무슨 주의자냐고.굳이 그렇게 분류하고 싶다면,정의와 진실을 실현시키고자 하니까 진보주의자고,민족적 자존을 지키고자 하니까 민족주의자고,그 어떤 간섭이나 억압 없이 예술창작을 하고자 하니까 자유주의자이다.”
그의 역저 ‘태백산맥’ 이후 우리 사회 일각에서 그를 향해 뱉어낸 색깔시비는 그의 지칠줄 모르는 창작열에적잖은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그런 아픔을 겪은 대가(大家)는 “아니다.그렇지 않다.”고 의연하고도 처절하게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스스로 진보와 민족·자유를 거론한 그는 “그러나 이런 분류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문학을 섬기며 남은 생애를 흠없이 살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라는 소박하면서도 초연한 속내를 고백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작품 전편을 통해 ‘삶에 뿌리 박은 민중성’을 줄기차게 파헤쳐 왔다.이런 의식 속에는 ‘역사란 민중이 그들의 피와 땀으로 엮어 가는 것’이라는 인식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그 자신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로 상징되는 한국 현대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민중이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박정희를 떠올린다.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어리석음이고 비극이다.”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그에게 “이문열씨는 우파를,조정래씨는 좌파를 대표한다고 했는데 이런 일각의 평가에 동의하느냐.”고 물었다.이념적으로 경직된 우리 사회의 이분법적 사고관행을 드러내는 이 촌스러운 질문에 그는“정치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좌파라고 한다면 나는 거부한다.그러나 개혁 진보를 지지하는 입장의 좌파라는 것에는 동의한다.”고 스스로 이념적 갈래를 정리했다.
그가 ‘태백산맥’을 통해,냉전시대의 반공논리에 세뇌된 사회에는 ‘악령’이나 다름없는 빨치산을 두고,‘그들도 인간이었다.’고 외치고 나서자 일각에서는 그의 출생 전력까지 들추며 ‘빨갱이를 미화했다.’고 문제삼고 들었다.그러나 그는 흔들림없이 입장을 지켜냈다.
“당시 빨치산의 다수는 농민이었고,그들은 생산물의 칠팔할을 빼앗겨 보리죽으로 연명한 이들이었다.결국 그들이 바라는 것은 사람답게 사는 것이었다.”며 “식량이 부족해 수많은 사람들이 병들고 죽어가는 지금의 북한을 보면 빨치산들이 저 세상에서 통곡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치열한 그의 문학적 이념세계는 그래도 세간에 토막토막 알려졌으나 하나뿐인 아들과 손자 얘기 등 개인사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책에는 그와 절친한 가수 조영남과 관련한 이런 일화도 담겨 있다.조씨가 부인 윤여정과 헤어질 무렵의 일이다.“그가 이혼을 앞두고 우리 집에 와 있으면서 윤씨와 전화로 재산에 관한 논의를 하기에 내가 ‘당신은 또 벌 수 있으니 다 주라.’고 조언했다.자식을 그쪽에서 키우니 아무말 말고 다 주라고 했다.그가 ‘차도 줘야 하냐.’고 물어서 ‘차는 너의 발이니까 차만 빼놓고 다주라.’고 했다.”며 그것이 조씨에게 한 유일한 충고였다고 술회했다. 모두 8부로 구성된 책은 오늘의 세태를 그의 시각에서 관찰하고 평가한 ‘어지러운 바람’을 비롯,‘작가의 편지’ ‘왜 문학을 하는가’ ‘문학의 그림자’와 문학취재기인 ‘길과 함께한 생각들’을 실어 문학으로 일가를 이룬 그의 진면목을 원형대로 살필 수 있도록 꾸며졌다.
이 시대를 사는 문학인답게 그는 ‘세상과 문학의 가벼움’에 대해서도 그의 말을 전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세상이 가벼워지는 것은 1980년대의 치열성과 엄숙성에서 소외됐던 사람들의 반발에서 비롯됐다고 본다.그러나 문인들이 그것에 부화뇌동하고 편승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그것은 참다운 문인의 길이 아니다.”
심재억기자 jeshim@
2003-01-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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