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미년(癸未年)벽두에 많은 덕담들이 오간다.희망과 기대 속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그 어느때보다도 강하게 느껴진다.그러나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새해의 화두 속에 새대간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2030과 5060으로 대별되는 세대간의 갈등 구조가 오피니언 리더 등 식자층에 회자되면서 점차 일반화·고착화되는 것 같아 착잡한 심경이다.어쩌다 우리사회가 세대라는 잣대로 양분되면서 양극화로 치닫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을까.
과거에도 세대간 갈등은 상존했다.그래서 자아 내면에서부터 부자 고부 가족 민족 노사 지역 민족 등에 이르기까지의 쌍방 또는 다자간 끊임없는 갈등이 때로는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때로는 그 저해요인으로 작용해 왔다.그러나 요즘 우리사회에 만연된 세대간 갈등은 의식과 이념의 전향적인 변화라는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골이 지나치게 깊어 행여 국가와 사회발전의 저해요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젊은이들은 “기성세대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로 자신들을 몰이해한다.”고 말하는 반면나이든 사람들은 “젊은 애들이 뭘 모르며 분위기에 휩쓸려 너무 설쳐댄다.”고 말한다.이같은 대립구도는 너무도 확연해 그대로 두면 벌어진 틈이 쉽게 좁혀질 것 같지가 않다.
때문에 우리는 계미년을 양의 순한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세대간 갈등을 완화시키고 화합을 도모하는 한해로 삼았으면 한다.2030과 5060은 단순히 신세대와 기성세대 이전에 대개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다.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접근한다면 갈등의 해법은 쉽게 찾을 수도 있다.
먼저 부모 세대들은 젊은이들의 신사고와 개혁성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젊은 것들이 뭘 안다고….” 하는 연령 및 경험 우월주의는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젊은이들도 나이든 사람에 대해 예의를 갖추고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존중해 줘야 한다.그리고 2030도 나중에 5060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얼마 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지하철에서 목격한 일이다.객차 안에서 젊은 두 사람이 심하게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그때 옆에 있던 한 노인이 “이봐 젊은이들 같은 민족끼리 뭘 그렇게싸우나.”라며 나무랐다.그러자 두 젊은이들이 싸움을 멈추고 멋쩍었는지 다음 정거장에서 같이 내렸다.짧은 순간이었지만 가슴에 조그만 감동이 일었다.노인의 용기있는(?) 행동과 함께 나이든 사람의 말을 듣고 자기들 잘못을 깨달은 듯한 젊은이의 모습에서 세대간의 아름다운 조화 같은 게 느껴졌다.
갈등은 그 갈등이 화합으로 발전할 때 진가를 발휘한다.갈등이 없으면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는 점은 굳이 헤겔의 변증법을 빌리지 않더라도 역사가 증명해주지 않는가.
어떠한 지역,어떠한 시대에도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갈등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사회가 정체되지 않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증표로 바람직한 현상이다.세대간 갈등은 다양한 문제점들을 드러나게 해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이것을 인식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필요한 것은 나와 상대방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이는 태도다.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나의 생각과,나의 경험을 일방적으로 강요함으로써 심각한 갈등이 발생한다.
기성세대가 삶을 살아오며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가 역동적인 청년정신과 결합될 때 비로소 세대차가 세대비약으로 승화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지난해 6월 서울 광화문과 시청앞 광장을 가득 메운 태극기 물결을 목도한 바 있다.그 자리에는 영호남도,부자도 거지도 없었다.60대의 할아버지에서 코흘리개 꼬마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구호 하나로 통했다.감동의 눈물을 쏟아내던 그때를 회상하며 케케묵은 갈등을 모두 풀어버리자.
2030과 5060으로 대별되는 세대간의 갈등 구조가 오피니언 리더 등 식자층에 회자되면서 점차 일반화·고착화되는 것 같아 착잡한 심경이다.어쩌다 우리사회가 세대라는 잣대로 양분되면서 양극화로 치닫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을까.
과거에도 세대간 갈등은 상존했다.그래서 자아 내면에서부터 부자 고부 가족 민족 노사 지역 민족 등에 이르기까지의 쌍방 또는 다자간 끊임없는 갈등이 때로는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때로는 그 저해요인으로 작용해 왔다.그러나 요즘 우리사회에 만연된 세대간 갈등은 의식과 이념의 전향적인 변화라는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골이 지나치게 깊어 행여 국가와 사회발전의 저해요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젊은이들은 “기성세대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로 자신들을 몰이해한다.”고 말하는 반면나이든 사람들은 “젊은 애들이 뭘 모르며 분위기에 휩쓸려 너무 설쳐댄다.”고 말한다.이같은 대립구도는 너무도 확연해 그대로 두면 벌어진 틈이 쉽게 좁혀질 것 같지가 않다.
때문에 우리는 계미년을 양의 순한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세대간 갈등을 완화시키고 화합을 도모하는 한해로 삼았으면 한다.2030과 5060은 단순히 신세대와 기성세대 이전에 대개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다.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접근한다면 갈등의 해법은 쉽게 찾을 수도 있다.
먼저 부모 세대들은 젊은이들의 신사고와 개혁성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젊은 것들이 뭘 안다고….” 하는 연령 및 경험 우월주의는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젊은이들도 나이든 사람에 대해 예의를 갖추고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존중해 줘야 한다.그리고 2030도 나중에 5060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얼마 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지하철에서 목격한 일이다.객차 안에서 젊은 두 사람이 심하게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그때 옆에 있던 한 노인이 “이봐 젊은이들 같은 민족끼리 뭘 그렇게싸우나.”라며 나무랐다.그러자 두 젊은이들이 싸움을 멈추고 멋쩍었는지 다음 정거장에서 같이 내렸다.짧은 순간이었지만 가슴에 조그만 감동이 일었다.노인의 용기있는(?) 행동과 함께 나이든 사람의 말을 듣고 자기들 잘못을 깨달은 듯한 젊은이의 모습에서 세대간의 아름다운 조화 같은 게 느껴졌다.
갈등은 그 갈등이 화합으로 발전할 때 진가를 발휘한다.갈등이 없으면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는 점은 굳이 헤겔의 변증법을 빌리지 않더라도 역사가 증명해주지 않는가.
어떠한 지역,어떠한 시대에도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갈등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사회가 정체되지 않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증표로 바람직한 현상이다.세대간 갈등은 다양한 문제점들을 드러나게 해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이것을 인식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필요한 것은 나와 상대방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이는 태도다.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나의 생각과,나의 경험을 일방적으로 강요함으로써 심각한 갈등이 발생한다.
기성세대가 삶을 살아오며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가 역동적인 청년정신과 결합될 때 비로소 세대차가 세대비약으로 승화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지난해 6월 서울 광화문과 시청앞 광장을 가득 메운 태극기 물결을 목도한 바 있다.그 자리에는 영호남도,부자도 거지도 없었다.60대의 할아버지에서 코흘리개 꼬마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구호 하나로 통했다.감동의 눈물을 쏟아내던 그때를 회상하며 케케묵은 갈등을 모두 풀어버리자.
2003-01-13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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