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문의 영광 - 가방끈 긴 남자, 조폭 사위 되다

영화/ 가문의 영광 - 가방끈 긴 남자, 조폭 사위 되다

입력 2002-09-05 00:00
수정 2002-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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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는 ‘조폭’,주제는 ‘가족애’인 액션 코미디? 폭력으로 가족을 말하고 거기다 웃음까지?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조합이 어려울 것 같은 설정이다.

오는 13일 개봉하는 정흥순 감독의 ‘가문의 영광’(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은 바로 그 대목에서 점수를 챙기고 들어가는 영화다.정 반대편에 대립할 듯한 두 단어를 얼렁뚱땅 손잡게 한,이를테면 ‘휴먼 조폭 코미디’다.

폭력이 동력이 되는 조폭영화를 기대했다간 첫 장면부터 헷갈린다.첫눈에도 다르게 생긴 발바닥 둘을 클로즈업한 영화는 얼핏 멜로드라마 냄새를 피운다.서울대 법대를 수석졸업한 벤처기업의 젊은 CEO인 박대서(정준호)는 곁에 나란히 누운 낯선 여자를 보고는 화들짝 놀란다.여자 장진경(김정은)도 마찬가지.간밤에 동침한 듯한 두 사람은 초면임에 틀림이 없다.

영문이야 어찌됐건 툴툴 털고 헤어지면 해결될 일이 여자의 특이한 ‘가족성분’ 때문에 엇박자를 탄다.진경은 호남에서 제일가는 조폭 집안의 고명딸.‘쓰리 제이’란 별칭의 조직 대부인 아버지(박근형)와 세 오빠들이 계략을 꾸몄다.‘엘리트 집안 만들기’를 모토로,어떻게든 가방 끈 긴 사위를 들여 가문의 영광을 보겠다고 작정한 것.

사전정보 없이 영화를 본다면 뜻밖에 시선이 쏠릴 얼굴은 유동근이다.그의 역할은 쓰리제이의 맏아들 인태.안방극장에서 품위 있는 중년이나 카리스마 넘치는 왕으로 이미지를 굳혀온 그의 변신은 상상치를 훨씬 뛰어넘는다.흰구두,빨간 와이셔츠,‘빤짝이’양복 차림에 질펀한 호남사투리를 구사하는 연기는 영화의 최대 감상 포인트.박근형의 웃기는 ‘일탈 연기’도 남녀 주인공들의 입지를 좁혀놨을 정도다.

두 사람의 배꼽잡는 세트플레이 한 장면.“그러문 작업 시작허겄슴니다,아부지∼” 박대서를 매제로 만들고 말겠다는 각오로 돌아서는 유동근.그의 걸쭉한 사투리에 웃음이 터질락 말락한 순간,꽁지머리를 묶은 박근형이 카운터블로를 날린다.“야야,왔으문 이거 한판 혀야제.” 바둑판을 들여다보며 ‘알까기’에 여념없는 박근형의 코미디에 폭소가 안 터지고는 못 배긴다.

사귀던 여자가 있는 대서를 진경의 남편감으로 만들기 위해쓰리제이의 세아들이 엎치락뒤치락 공갈협박하는 과정이 이야기의 얼개다.기대 이상으로 조연들의 선전이 돋보이는 영화는, 그러나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렇다 할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주연들이 오히려 조연들의 빛에 가려 허우적대는 것도 감상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끝내 사랑을 이룬 대서와 진경이 결혼식을 올리는 결말 부분에서는 허탈한 냉소가 터지고 만다.쓰리제이의 숙적이 각목부대를 이끌고 결혼식장에 나타나 갑자기 비장한 액션을 펼치는 대목은 엉뚱하고 느닷없다.한번쯤 영화 스케일을 자랑하고 넘어가야겠다는 강박에 의미없이 폭력을 끌어들였다는 옹색한 느낌이다.

정흥순 감독은 97년 ‘현상수배’로 데뷔했다.

황수정기자 sjh@
2002-09-05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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