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이주노동자를 동등한 이웃으로

[열린세상] 이주노동자를 동등한 이웃으로

강수돌 기자 기자
입력 2002-08-16 00:00
수정 2002-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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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미스타드’를 보면 수많은 아프리카 원주민이 노예 상인들에 의해 강제로 팔려나가는 모습이 아주 생생하다.17세기 들어 아메리카 대륙에 농장이나 광산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값싼 노동력이 대규모로 필요했기 때문이다.노예를 실어 나르던 큰 배에는 사람들이 마치 나무토막처럼 차곡차곡 쌓여 운반되었고 혹시 병든 자는 바다에 내동댕이쳐졌다.육지에 내려서도 좋은 상품이 될 만한 자에게만 겨우 약간의 밥이 주어졌다.이 영화의 교훈은,돈의 패러다임이 삶의 패러다임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꼭같은 현실이 바로 지금 ‘우리의’ 위대한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그 대표적 예가 다른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다. 하나: 중국인 허씨는 현지법인 연수생으로 와서 공장에서 프레스 작업을 했다.기계에 이상이 있는 것 같아 상사에게 말했으나 그는 아무 상관없으니 그냥 일하라고 했다.허씨는 작업을 계속했고 기계는 작업 도중 이상을 일으켰다.그로 인해 허씨는 두 손가락을 잃고 한 손가락은 현저한 장애를 보이는 사고를당하고 말았다.

둘: 네팔 노동자 둔씨는 돈을 벌기 위해 9년 전 한국에 왔다.그는 숱한 어려움에도 철문 코팅,식품 포장,농장 일,플라스틱 공장,전자 조립 등 다양한 일을 했다.그가 경험한 한국 회사와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건강이나 산업안전,인간다운 노동조건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둔씨가 몸이 아파 고통스러워 공장 일을 멈추고 병원에 가겠다고 하자 사장은 허락하지 않았다.그래도 억지로 병원에 가면 사장은 월급에서 하루 일당을 뺐다.철문 코팅 회사에서 일할 때는 아침 8시30분에 시작해서 하루종일 하고도 저녁 내내 일하고 새벽 1시나 2시까지 연장 근무를 했다.매일 그런 식으로 일하다가는 쓰러질 것같아 노동시간을 줄여달라고 건의했지만 묵살당했을 뿐 아니라 협박까지 당했다.맘에 안 들면 출입국관리소에 전화해서 강제 추방한다는 것이었다.

셋: 방글라데시에서 대학생이었던 꼬빌은 24세의 나이로 한국에 와 경기도 마석의 한 가구 공장에 취업했다.반장이던 한국인 노동자가 “야 임마,일어나봐.”라고 해서 “난 임마 아니에요.내 이름은 꼬빌이에요.”라 했다.그러자 반장이 “야 임마.”라 또 그랬다.그는 못 들은 척 했다.갑자기 주먹이 날아왔고 코피가 흘렀다.한국 동료들이 몰려들었고 사장과 부인도 달려왔다.부인은 “네가 잘못한 거야.미안하다 그래.”라 했다.그는 “나는 잘못한 게 아니야.나는 신고하겠어.”라 했다.이에 한국 동료들은 “너는 신고 못해.너는 불법체류자니까.”라고 ‘딱지’를 붙였다.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위대한 한국을 온 세상에 알렸다고 좋아하던 때가 엊그제다.

그러나 위의 그림은 1990년대 이후 항상 존재하는 우리 자화상이다.돈벌이를 한답시고 또 한국 경제를 살린답시고 다른 나라 사람들을 ‘현대판 노예’로 부려먹는 일이 허다한 것은 우리 모두의 수치다.이제부터라도 바꾸어야 한다.

첫째,이주노동자는 단순한 생산 요소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다.돈벌이수단이나 이방인이 아닌 이웃이나 친구로 대해야 한다.근본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둘째,현재의 연수생 제도를 ‘땜질처방’할 것이 아니라 폐지해야 한다.부족한 인력 수급은 정부 공공기관이 담당하여 전 과정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또 고용주와 이주노동자에게 ‘그린카드’를 부여하여 상호간 자유 선택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이런 점에서 8월13일,국가인권위원회가 연수생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라고 권고한 것은 고무적이다.

셋째,외·내국인 사이의 차별을 지양하고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계 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언론과 교육 분야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발전시켜나가야 한다.우선,크레파스나 그림물감의 이름에서 ‘살색’이라는 것이 인종차별주의적 성격을 띤다고 해서 그 이름 바꾼 것은 매우 희망적이다.또 많은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라는 말보다 ‘이주’노동자라는 말을 쓰는 것도 좋은 일이다.앞으로 모든 나라나 민족의 전통적 가치나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교류는 확대해야 한다.그래야 우리가 가진 이중의식,즉 선진국 사람에게는 온갖 아양을 떨면서도 후진국 사람에겐 경멸을 일삼는 모습을 올바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 경영학
2002-08-1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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