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을 걸고 쌀개방을 막겠다던)약속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데 대해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최종 타결을 1주일여 앞둔 지난 93년12월 9일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으로 대국민사과문을 읽어내려갔다. 김 대통령은 “앞으로는 결코 미봉책이 아니라 실제 피부로 절감할 수 있는 농업대책을 펴겠다.”고 말했다.이후 총 57조원이 쌀산업의 경쟁력 강화를위한다는 명목으로 투입됐다.‘농정개혁추진방안’(94년)‘쌀생산종합대책’(95년) ‘쌀산업발전종합대책’(96년)등 숱한 대책들도 양산됐다.그런데도 정부는 또다시 중장기쌀정책을 마련중이다.어디가 잘못된 것일까.
■감산,증산,그리고 다시 감산으로. UR협정 타결 직후인 지난 94년 정부는 쌀 감산정책을 발표했다.그러나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내세웠던 정책기조는 오래가지 못했다.93∼95년의 흉작으로 쌀 재고가 바닥수준(95년말 200만섬)으로 떨어지자 95년말부터 다시 증산정책으로 선회했다.그때 일부에서 “현재의 쌀 부족이 구조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일시적인 문제이므로 기존 정책을 유지하자.”는 주장을 폈지만 정부·여당의 누구도 귀담아 듣지않았다. 증산으로 방향을 바꾼 정부정책은 최근까지 계속됐다.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의 말을 들어보자.
“현 정부가 출범하고 반년 남짓 흐른 98년 가을, 쌀산업정책을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이때 한 연구원이 ‘증산 일변도의 쌀정책을 재고해 볼 시점’이라고 발표했다가 정부 고위관계자로부터 호된 질타를 당했습니다.그때 분위기는 정부의 쌀정책 방향에 대해 아무도 토를 달 수 없는상황이었습니다.” 정부는 이보다 3년여가 늦은 지난해 말에 가서야 과잉생산과 재고누적이 현실로 나타나자 부랴부랴 감산을 발표했다.
■‘돈잔치’로 끝난 증산정책.
정부는 지난 92∼98년에 농어촌 구조개선에 42조원을 쏟아부었다.94년부터는 이와 별도로 10년간 한시적으로 농어촌특별세를 신설,연간 1조 5000억원씩을 추가로 지원하고 있다.이를 모두 합하면 57조원에 달한다.
지난 96년을 기준으로 각각 전국의 논값은 70조 8000억원(118만㏊×3000평×평당 2만원),쌀 생산액은 8조 9000억원(3700만섬×섬당 24만원)이었다.따라서 전국의 논의 80% 이상을 살 수 있으며,국내에서 5년간 생산된 쌀을 모두 사고도남는 규모다.
서강대 사공용(司空鎔·경제학)교수는 “지나치게 농지확보 일변도로 정책이 추진되면서 소득은 보전되지 않고 투자액수만 많아졌다.”고 말했다.그는 “㏊(3000평)당 4500만원의 고비용을 감수해가며 산을 깎아 논으로 만드는 무모한시도들이 도처에서 이뤄졌다.”면서 “이제는 다시 감산을위해 그 논을 놀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농림부 관계자는 “정부 보조금이나 융자금이 지방자치단체 등에 들어가면서 일부 제대로 쓰이지 못한 부분이 있다.
”고 인정했다.정부의 쌀 증산정책은 이처럼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고 사상최대 규모의 국고손실이 초래됐지만 지금까지 감사다운 감사나 국회의 국정조사가 한번도 이뤄지지 않은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농업투자의 효율성 원점에서 재점검해야.
지난 90년대 이후 정부의 쌀정책은 생산원가를 줄여 가격을 낮추는데 큰 틀을 맞추고 있었다.정부는 농가당 경지면적을 1.2㏊에서 2.7㏊로 늘려 국제 평균가격의 7배 수준인국내 쌀값을 3배 정도로 낮추겠다고 밝혀왔다.하지만 아직1㏊ 미만 논농가 비중이 전체 쌀농가 중 75.7%를 차지할 정도로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쌀 시세는 국제가격과 최고 10배 가까이 벌어져 경쟁력은 갈수록 약화되는 추세다.
중앙대 윤석원(尹錫元·산업경제학)교수는 “정부가 UR 이후 쌀 생산원가를 40% 이하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각종정책을 폈지만 애초부터 타깃을 가격에 맞춘데 문제가 있었다.”면서 “생산원가나 가격 등 공급측면의 경쟁력보다는품질과 같은 수요측면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무게를 더 실었어야 했다.”고 말했다.특히 우리나라처럼 생산비 중에서 40∼50%를 토지비용이 차지하는 상황에서 원가인하에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농촌경제연구원 박동규(朴東奎)연구위원은 “대부분 농지확충과 규모확대 등 생산기반 정비나 농업기술 선진화 등에자금이 투입됐고 장기적으로 농민들의 소득을 지지하는 쪽의 투자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yeomjs@
■日 쌀개방 치밀한 준비.
지난 93년의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이후 쌀정책에서 한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우리나라가 ‘쌀시장추가개방 불가’를 외치며 감산 → 증산 → 감산을 반복하고 있을 때 일본은 품질향상과 농가소득보전을 정책목표의맨앞에 올려놓고 단계적 시장개방 조치를 해나갔다.그 결과우리나라는 세계무역기구(WTO) 쌀시장 개방 재협상을 앞두고 허둥지둥하고 있지만 일본은 여유있는 모습이다.당초 예정보다 1년 8개월 앞당겨 99년에 쌀시장을 개방한 데다 내부적으로 상당한 구조개선을 이뤘기 때문이다.
일본은 UR 이후 추곡수매가를 연간 3∼4%씩 낮췄다.지난해수매가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UR협상 기준연도(86∼88년)평균가보다 116%나 뛰었으나 일본은 16.7%가 떨어졌다.올해분 수매가도 지난해보다 2.8% 내렸다.일본은 지난 98년 신식량법을 제정해 추곡수매때 농민들이 희망하는 전량을 사주던 것을 3%로 제한했다.주목할 부분은 일본이 UR협정 당시 관세화(쌀시장 개방)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점. UR 협정문에 ‘관세화를 예정보다 앞당겨 실시하면 의무수입량을 이전의 절반으로 줄인다.’는 내용을 끼워 넣었다.
특별취재반.
■감산,증산,그리고 다시 감산으로. UR협정 타결 직후인 지난 94년 정부는 쌀 감산정책을 발표했다.그러나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내세웠던 정책기조는 오래가지 못했다.93∼95년의 흉작으로 쌀 재고가 바닥수준(95년말 200만섬)으로 떨어지자 95년말부터 다시 증산정책으로 선회했다.그때 일부에서 “현재의 쌀 부족이 구조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일시적인 문제이므로 기존 정책을 유지하자.”는 주장을 폈지만 정부·여당의 누구도 귀담아 듣지않았다. 증산으로 방향을 바꾼 정부정책은 최근까지 계속됐다.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의 말을 들어보자.
“현 정부가 출범하고 반년 남짓 흐른 98년 가을, 쌀산업정책을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이때 한 연구원이 ‘증산 일변도의 쌀정책을 재고해 볼 시점’이라고 발표했다가 정부 고위관계자로부터 호된 질타를 당했습니다.그때 분위기는 정부의 쌀정책 방향에 대해 아무도 토를 달 수 없는상황이었습니다.” 정부는 이보다 3년여가 늦은 지난해 말에 가서야 과잉생산과 재고누적이 현실로 나타나자 부랴부랴 감산을 발표했다.
■‘돈잔치’로 끝난 증산정책.
정부는 지난 92∼98년에 농어촌 구조개선에 42조원을 쏟아부었다.94년부터는 이와 별도로 10년간 한시적으로 농어촌특별세를 신설,연간 1조 5000억원씩을 추가로 지원하고 있다.이를 모두 합하면 57조원에 달한다.
지난 96년을 기준으로 각각 전국의 논값은 70조 8000억원(118만㏊×3000평×평당 2만원),쌀 생산액은 8조 9000억원(3700만섬×섬당 24만원)이었다.따라서 전국의 논의 80% 이상을 살 수 있으며,국내에서 5년간 생산된 쌀을 모두 사고도남는 규모다.
서강대 사공용(司空鎔·경제학)교수는 “지나치게 농지확보 일변도로 정책이 추진되면서 소득은 보전되지 않고 투자액수만 많아졌다.”고 말했다.그는 “㏊(3000평)당 4500만원의 고비용을 감수해가며 산을 깎아 논으로 만드는 무모한시도들이 도처에서 이뤄졌다.”면서 “이제는 다시 감산을위해 그 논을 놀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농림부 관계자는 “정부 보조금이나 융자금이 지방자치단체 등에 들어가면서 일부 제대로 쓰이지 못한 부분이 있다.
”고 인정했다.정부의 쌀 증산정책은 이처럼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고 사상최대 규모의 국고손실이 초래됐지만 지금까지 감사다운 감사나 국회의 국정조사가 한번도 이뤄지지 않은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농업투자의 효율성 원점에서 재점검해야.
지난 90년대 이후 정부의 쌀정책은 생산원가를 줄여 가격을 낮추는데 큰 틀을 맞추고 있었다.정부는 농가당 경지면적을 1.2㏊에서 2.7㏊로 늘려 국제 평균가격의 7배 수준인국내 쌀값을 3배 정도로 낮추겠다고 밝혀왔다.하지만 아직1㏊ 미만 논농가 비중이 전체 쌀농가 중 75.7%를 차지할 정도로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쌀 시세는 국제가격과 최고 10배 가까이 벌어져 경쟁력은 갈수록 약화되는 추세다.
중앙대 윤석원(尹錫元·산업경제학)교수는 “정부가 UR 이후 쌀 생산원가를 40% 이하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각종정책을 폈지만 애초부터 타깃을 가격에 맞춘데 문제가 있었다.”면서 “생산원가나 가격 등 공급측면의 경쟁력보다는품질과 같은 수요측면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무게를 더 실었어야 했다.”고 말했다.특히 우리나라처럼 생산비 중에서 40∼50%를 토지비용이 차지하는 상황에서 원가인하에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농촌경제연구원 박동규(朴東奎)연구위원은 “대부분 농지확충과 규모확대 등 생산기반 정비나 농업기술 선진화 등에자금이 투입됐고 장기적으로 농민들의 소득을 지지하는 쪽의 투자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yeomjs@
■日 쌀개방 치밀한 준비.
지난 93년의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이후 쌀정책에서 한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우리나라가 ‘쌀시장추가개방 불가’를 외치며 감산 → 증산 → 감산을 반복하고 있을 때 일본은 품질향상과 농가소득보전을 정책목표의맨앞에 올려놓고 단계적 시장개방 조치를 해나갔다.그 결과우리나라는 세계무역기구(WTO) 쌀시장 개방 재협상을 앞두고 허둥지둥하고 있지만 일본은 여유있는 모습이다.당초 예정보다 1년 8개월 앞당겨 99년에 쌀시장을 개방한 데다 내부적으로 상당한 구조개선을 이뤘기 때문이다.
일본은 UR 이후 추곡수매가를 연간 3∼4%씩 낮췄다.지난해수매가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UR협상 기준연도(86∼88년)평균가보다 116%나 뛰었으나 일본은 16.7%가 떨어졌다.올해분 수매가도 지난해보다 2.8% 내렸다.일본은 지난 98년 신식량법을 제정해 추곡수매때 농민들이 희망하는 전량을 사주던 것을 3%로 제한했다.주목할 부분은 일본이 UR협정 당시 관세화(쌀시장 개방)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점. UR 협정문에 ‘관세화를 예정보다 앞당겨 실시하면 의무수입량을 이전의 절반으로 줄인다.’는 내용을 끼워 넣었다.
특별취재반.
2002-02-18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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