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된 제정구 전 국회의원을 처음 본 게 22년 전이었다.긴급조치 비판을 금지하는 긴급조치까지 만들어 독재 권력을 휘두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하가 쏜 흉탄에 쓰러지고,캠퍼스 벤치와 잔디밭을 점령하고 있던 사복경찰이 물러나고 난 다음에야 그는 대학으로 돌아왔다.두 번째 복학이었다.
그의 이름은 전설이었다.데모꾼에다가 빈민운동가라는 그를 만나는 것은 따라서 약간의 긴장감을 동반하는 것이었다.하지만 그의 소탈함을 느끼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1966년 대학에 들어와 제적과 복학을 거듭,14년 만에대학에 돌아온 소감을 묻자 “4수 끝에 대학에 들어 왔어.
어렵게 들어온 대학이라서 오래 다니는가 봐.”라면서 순진하게 웃는다.그러더니 4수생 생활과 빈민운동 생활을 살살풀어 놓았다.
1996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도시 주거 문제에 관한 국제회의에서는 ‘주거는 기본적인 인권’이라는 중요한 원칙이 정해졌는데 고인은 이미 70년대 이를 깨달았고 온 몸으로 실천해 왔던 것이다.그는 국회의원이 된 뒤에 ‘신부와벽돌공’이라는 책을 냈다.자신의 인생 역정을 회고하는 내용이었다.그 책을 서명해 건네 주면서 몹시 쑥스러워했다.
엉터리 책을 써 놓고도 제 멋에 겨워 자랑이 질펀한 정치인들이 즐비한 터에 그의 눈은 여전히 맑은 빛을 간직하고 있었다.그는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도 큰 돈을 쓸 줄 몰랐다.
타락으로 가는 모든 길을 의지로써 스스로 차단해 놓고 있었다.험한 세월 헤쳐 나간다는 핑계로 돈과 청탁에 손과 발을 적시거나 얼굴이 두꺼워진 부류와는 가는 길이 달랐다.
3년 전 폐암으로 유명을 달리한 뒤 그는 민주화 운동의 전과 때문에,친일파까지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는 국립묘지에가지 못했다. 부인 신명자 여사는 빈민운동 현장의 한 공장에서 일하고 그 월급으로 살고 있다.공장에서는 ‘복음자리’라는 상표로 잼을 만들어 내고 있다.김부겸 국회의원은선물을 돌려야 할 때 고인의 숨결을 전하듯 그 잼을 보내고있다.
1일 한국언론재단 국제회의장에선 많은 인사들이 참석한가운데 제정구 의원 3주기 추모행사가 열렸다.나라가 어지럽고 삶이 고단할수록 ‘실천적 지식인으로,빈민의 벗으로,개혁을 전도하는 정치인으로’ 살다 간 고인의 염원과 열정,실천의지가 더욱 그리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강석진 논설위원 sckang@
그의 이름은 전설이었다.데모꾼에다가 빈민운동가라는 그를 만나는 것은 따라서 약간의 긴장감을 동반하는 것이었다.하지만 그의 소탈함을 느끼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1966년 대학에 들어와 제적과 복학을 거듭,14년 만에대학에 돌아온 소감을 묻자 “4수 끝에 대학에 들어 왔어.
어렵게 들어온 대학이라서 오래 다니는가 봐.”라면서 순진하게 웃는다.그러더니 4수생 생활과 빈민운동 생활을 살살풀어 놓았다.
1996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도시 주거 문제에 관한 국제회의에서는 ‘주거는 기본적인 인권’이라는 중요한 원칙이 정해졌는데 고인은 이미 70년대 이를 깨달았고 온 몸으로 실천해 왔던 것이다.그는 국회의원이 된 뒤에 ‘신부와벽돌공’이라는 책을 냈다.자신의 인생 역정을 회고하는 내용이었다.그 책을 서명해 건네 주면서 몹시 쑥스러워했다.
엉터리 책을 써 놓고도 제 멋에 겨워 자랑이 질펀한 정치인들이 즐비한 터에 그의 눈은 여전히 맑은 빛을 간직하고 있었다.그는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도 큰 돈을 쓸 줄 몰랐다.
타락으로 가는 모든 길을 의지로써 스스로 차단해 놓고 있었다.험한 세월 헤쳐 나간다는 핑계로 돈과 청탁에 손과 발을 적시거나 얼굴이 두꺼워진 부류와는 가는 길이 달랐다.
3년 전 폐암으로 유명을 달리한 뒤 그는 민주화 운동의 전과 때문에,친일파까지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는 국립묘지에가지 못했다. 부인 신명자 여사는 빈민운동 현장의 한 공장에서 일하고 그 월급으로 살고 있다.공장에서는 ‘복음자리’라는 상표로 잼을 만들어 내고 있다.김부겸 국회의원은선물을 돌려야 할 때 고인의 숨결을 전하듯 그 잼을 보내고있다.
1일 한국언론재단 국제회의장에선 많은 인사들이 참석한가운데 제정구 의원 3주기 추모행사가 열렸다.나라가 어지럽고 삶이 고단할수록 ‘실천적 지식인으로,빈민의 벗으로,개혁을 전도하는 정치인으로’ 살다 간 고인의 염원과 열정,실천의지가 더욱 그리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강석진 논설위원 sckang@
2002-02-02 8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