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3일 파리강화회의 한국대표와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내며 독립외교 활동을 벌였던 우사(尤史) 김규식(金奎植)선생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881년 부산 동래에서 태어난 선생은 네살 때 미국선교사 언더우드목사에게 입양돼 서양식 근대교육을 받았다.
경술국치후 국내 독립운동 기반이 붕괴되자 1913년 4월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동제사에 가입했다.이후 프랑스,미국,러시아 등지를돌며 한국독립운동의 지지와 적극적 지원을 호소했다.
상해로 돌아온 선생은 1930년 초 민족통일전선 운동을 전개했으며 1944년 임시정부 부주석에 선임됐다.
선생은 광복후 임정요인으로 귀국,민족분단을 막고자 김구(金九) 선생과 함께 남북협상에 나서는 등 심혈을 기울이다 6·25전쟁중에 납북됐다.50년 12월10일 평북 만포진 부근에서 7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정부는 지난 1989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노주석기자 joo@
1881년 부산 동래에서 태어난 선생은 네살 때 미국선교사 언더우드목사에게 입양돼 서양식 근대교육을 받았다.
경술국치후 국내 독립운동 기반이 붕괴되자 1913년 4월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동제사에 가입했다.이후 프랑스,미국,러시아 등지를돌며 한국독립운동의 지지와 적극적 지원을 호소했다.
상해로 돌아온 선생은 1930년 초 민족통일전선 운동을 전개했으며 1944년 임시정부 부주석에 선임됐다.
선생은 광복후 임정요인으로 귀국,민족분단을 막고자 김구(金九) 선생과 함께 남북협상에 나서는 등 심혈을 기울이다 6·25전쟁중에 납북됐다.50년 12월10일 평북 만포진 부근에서 7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정부는 지난 1989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노주석기자 joo@
2000-12-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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