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장] 매향리의 작은 해법

[대한광장] 매향리의 작은 해법

임지현 기자 기자
입력 2000-05-19 00:00
수정 2000-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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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군의 작은 마을 매향리가 다시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신문보도에 따르면,미군측이 “엔진고장으로 무게를 줄이기 위해 폭탄 6발을 떨어뜨렸다”고 해명한 지난 8일의 사고로 주민 7명이 다치고 주택 수백 채가 파손되었다고 한다.‘쿠니 사격장’이 있는 매향리에서는 그동안 미군 비행기의 오폭으로 숨진 주민이 10여명에 이르고,대부분의 주민들이 난청 등에 시달리는 등 주민들의 고통과 피해가 극심했다는 보도도 뒤따른다.

신문 사설들은 주민들의 피해보상 요구에 대한 미군측의 성의 있는 답변과보상,그리고 정부측에 대해서는 사격장의 이전이나 주민 이주대책 등 주민들의 안전을 적극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주권국가로서의 책임감있는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나아가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불평등한 내용을 전면적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당위론을 제시한다.

지극히 당연한 주장들이다. 그런데 미군측의 성실한 태도,정부의 적극적인주민 안전대책,SOFA의 불평등 조항 개정 등의 당위론은 비단 어제,오늘 제기된 것은 아니다.미군의 오폭 등미군에 의한 한국 주민들의 피해가 있을 때마다 제기돼 온 주장들이다.당위적으로는 마땅하고 또 옳지만,개선될 여지가별반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당장 실현되기는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그것을 관철시킨다는 원칙을 굳게 견지하는 한편,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 있는 미시적이고 현실적인 대응책도 필요하지 않은가 한다.

작년인가 재작년 저공으로 비행하던 미군 비행기가 이탈리아 알프스 스키장의 케이블카 줄을 끊어뜨려 20여명의 관광객이 몰살한 사건이 있었다.이 사건에 대한 당시 이탈리아 민·관의 대처방식은 여러 모로 시사적이다.흐릿한기억을 되살린다면, 당시 이탈리아 조야(朝野)는 미군기지의 이전 등에 대한원칙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사고를 일으킨 미군 조종사가 비행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켰는지 여부를 파고들었다.이들이 제기한 문제의 핵심은 사건의당사자인 미군 조종사가 민간인 거주지역을 비행할 때 지켜야 하는 고도 제한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저공 비행했다는 것이었다.그것은 자연히 비행기록녹음테이프를 공개하라는 요구로 이어졌고,문제는 다시 비행기록테이프를 감춘 비행단장의 위법행위로 비화하였다.내 기억이 정확하다면,결국 문제의 조종사와 비행단장은 미국의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비행수칙을 위반하고 또 비행기록테이프를 은닉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8일 발생한 매향리사건의 핵심은 그것이 오폭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단순한 오폭이라면,그것은 조종사의 미숙함이나 무능력으로 돌릴 수 있다.그러나 미군측의 발표대로 엔진이 고장나서 무게를 줄이기 위해 폭격장의 경계밖에 폭탄을 떨어뜨렸다면,그것은 미군의 원칙을 의심케 하는 전적으로 다른문제이다. 나는 미군의 조종사 수칙에 비행기를 구하기 위해 민간인 거주지역에 폭탄을 떨어트려도 된다는 조항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정도의 야만 군대라면 전면적인 즉각 철수 외에는 다른 해답이 있을수 없다.추측컨대 문명국가의 군대라면,비행기를 민간인 거주지역에서 가능한 한 멀리 끌고 가서 민간인에게 피해가 없도록 하고 조종사는 탈출하라는식의 조종사 수칙이 있지 않을까한다.그렇다면 한쪽 엔진이 고장난 비행기를 구하기 위해 민간인 거주지역에 폭탄을 6발이나 떨어트린 그 비행기 조종사는 미군의 비행수칙을 위반한 것이다.SOFA의 문제가 아니라,군사수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조종사를 미국의 법리에 따라 군사재판에 회부하는 문제인 것이다.

한국정부는 우선 미군당국에 사고 비행기의 비행기록테이프를 공개하도록요구해야 할 것이다.또 그것을 바탕으로 문제의 조종사가 미군의 조종사 수칙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가려야 할 것이다.주한미군이 미국의 국내법에서도치외법권적 특혜를 누리지는 못하는 이상,우선은 미국의 국내법을 근거로 문제의 조종사를 처벌하게 함으로써 일벌백계의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한다.나는 미국측에 한국민의 입장을 고려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단지 미국이 법치국가이며,야만의 군대가 아닌 문명의 군대를 가진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을 스스로에게 재확인하라는 것이다.

林 志 鉉 한양대교수·사학
2000-05-19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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