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미국인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은 그들이 상식적인 행동 궤도를 벗어난 데다 의심 많고 편집광적이며 믿지 못할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과 거래할 수 있는가.” 최근 있었던 미국 공영방송 PBS대담 중의 한 질문이다.
“사실 북한 지도자들은 완고하다.그러나 결코 상식적인 궤도를 벗어나거나 비합리적인 사람들이 아니다.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매우 논리적이며이론적이다.단지 우리는 그들의 이론과 논리를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그래서 그들을 비논리적인 사람들로 간주하게 된 것이다.” 북한 고위층과 누구보다도 직접적으로 깊은 대화를 한 바 있는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의대답이다.
페리는 누구인가.그는 건의서 작성기간중 국무부·국방부·백악관·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해 북한관계 전문가,한·일 양국의 책임자들과 심도 있는협의를 가진 사람이다.그뿐 아니다.그는 높은 지성의 학자이며,1994년 6월북의 ‘핵무기 의혹’ 해결의 군사적 제재 목적으로 제2의 한국전쟁 발발 위기가 있을 당시 대북 군사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국방장관이었다.그런 그가 솔직히 시인하는 말이 “우리는 그동안 북한의 행동논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북의 행동은 결코 상식을 벗어난 것이 아니고,주어진 환경과 상황속의합리적인 행동방식이었다는 뜻이다.그는 또 “북한이 미사일 개발계획을 필요로 하는 여러가지 이유중 주된 이유는 국가안보·억지력이다.그 억지 대상은 바로 미국이다.북은 우리 미국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페리가 북의 핵의혹과 미사일개발 정책을 분석하고 건의한 결론이 북의 국가안보 보장이며 북과 국교정상화다.적대적 대치·견제관계를 탈피해 유화·협력관계로의 일대 전환이다.이는 한국 정부가 주장해온 한반도에서 냉전체제 해체 구상의 실현이다.그러나 공화당 다수의 미 의회는 북의 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해 강경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하며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제동을 걸고 있다.
홍수와 가뭄,기아와 고립 등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겪고 있는 동양의 한 작은 나라가 국제사회의 품격 있는 일원으로역할할 수 있도록 미국은 페리 조정관의 건의를 수용 실천,초강대국에 요구되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이것이 미국이 기치 높이 주창하고 있는 인도주의이며 기독교 정신이다.
이 당연한 시대적 변혁의 정책구도에서 북한과 일본의 수교협상이 시작된다.북이 당면한 최 주요과제가 국가의 안전보장이며 식량난을 포함한 경제적난국의 해결이다.전자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에서 찾을 수 있고,후자는 일본과의 관계정상화에서 얻을 수 있다.
1978년 8월 일본은 중국과 수교했다.1979년 1월의 중·미 수교보다 5개월앞섰다.전쟁 가해국으로 순서상 미국보다 먼저 사과와 도리를 지키고자 했던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전총리의 자세는 평가받고 있다.
1990년 9월 가네마루 신(金丸信)전부총리의 자민·사회 양당과 조선노동당3당은 공동대표 선언으로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전후(1945년 이후)의 적대적 행위와 보상’의 인정으로 일본 내에서 선언이문제됐고 정부간 회담은 8차회담 2년간의 난항 끝에 결렬된다.북측이 도저히받아들일 수없는 소위 ‘일본인 납치’ 문제 등을 전제사항으로 제기했기때문이다.비록 실력자 가네마루 부총리의 의지와 성의가 있었으나 보수·우익·관료들의 집요한 반대와 여론의 구사를 극복할 수 없었다.한국도 ‘조화와 병행 원칙’으로 제동을 걸었다.
일본은 100여년 전의 엄연한 역사적 침략사실과 진부(眞否)에 상호 입장 차이가 많은 ‘납치의혹’을 혼돈시키려는 일부 여론에 오도·좌우돼서는 안될것이다. 세계가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유럽연합(EU)·남미공동시장(MERCOSUR) 등 경제적·정치적으로 블록화돼 가는 시대조류에,일본은 그 기반이구미에 있기보다 아시아에 있다는 확실한 인식으로 20세기 불미한 과거를 청산하고 북·일 수교를 이룩해 새롭고 깨끗하고 덕(德) 있는 21세기 일본의위상을 확립하기를 기대한다.
[孫 章 來 前말레이시아 대사]
어떻게 그런 사람들과 거래할 수 있는가.” 최근 있었던 미국 공영방송 PBS대담 중의 한 질문이다.
“사실 북한 지도자들은 완고하다.그러나 결코 상식적인 궤도를 벗어나거나 비합리적인 사람들이 아니다.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매우 논리적이며이론적이다.단지 우리는 그들의 이론과 논리를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그래서 그들을 비논리적인 사람들로 간주하게 된 것이다.” 북한 고위층과 누구보다도 직접적으로 깊은 대화를 한 바 있는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의대답이다.
페리는 누구인가.그는 건의서 작성기간중 국무부·국방부·백악관·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해 북한관계 전문가,한·일 양국의 책임자들과 심도 있는협의를 가진 사람이다.그뿐 아니다.그는 높은 지성의 학자이며,1994년 6월북의 ‘핵무기 의혹’ 해결의 군사적 제재 목적으로 제2의 한국전쟁 발발 위기가 있을 당시 대북 군사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국방장관이었다.그런 그가 솔직히 시인하는 말이 “우리는 그동안 북한의 행동논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북의 행동은 결코 상식을 벗어난 것이 아니고,주어진 환경과 상황속의합리적인 행동방식이었다는 뜻이다.그는 또 “북한이 미사일 개발계획을 필요로 하는 여러가지 이유중 주된 이유는 국가안보·억지력이다.그 억지 대상은 바로 미국이다.북은 우리 미국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페리가 북의 핵의혹과 미사일개발 정책을 분석하고 건의한 결론이 북의 국가안보 보장이며 북과 국교정상화다.적대적 대치·견제관계를 탈피해 유화·협력관계로의 일대 전환이다.이는 한국 정부가 주장해온 한반도에서 냉전체제 해체 구상의 실현이다.그러나 공화당 다수의 미 의회는 북의 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해 강경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하며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제동을 걸고 있다.
홍수와 가뭄,기아와 고립 등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겪고 있는 동양의 한 작은 나라가 국제사회의 품격 있는 일원으로역할할 수 있도록 미국은 페리 조정관의 건의를 수용 실천,초강대국에 요구되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이것이 미국이 기치 높이 주창하고 있는 인도주의이며 기독교 정신이다.
이 당연한 시대적 변혁의 정책구도에서 북한과 일본의 수교협상이 시작된다.북이 당면한 최 주요과제가 국가의 안전보장이며 식량난을 포함한 경제적난국의 해결이다.전자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에서 찾을 수 있고,후자는 일본과의 관계정상화에서 얻을 수 있다.
1978년 8월 일본은 중국과 수교했다.1979년 1월의 중·미 수교보다 5개월앞섰다.전쟁 가해국으로 순서상 미국보다 먼저 사과와 도리를 지키고자 했던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전총리의 자세는 평가받고 있다.
1990년 9월 가네마루 신(金丸信)전부총리의 자민·사회 양당과 조선노동당3당은 공동대표 선언으로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전후(1945년 이후)의 적대적 행위와 보상’의 인정으로 일본 내에서 선언이문제됐고 정부간 회담은 8차회담 2년간의 난항 끝에 결렬된다.북측이 도저히받아들일 수없는 소위 ‘일본인 납치’ 문제 등을 전제사항으로 제기했기때문이다.비록 실력자 가네마루 부총리의 의지와 성의가 있었으나 보수·우익·관료들의 집요한 반대와 여론의 구사를 극복할 수 없었다.한국도 ‘조화와 병행 원칙’으로 제동을 걸었다.
일본은 100여년 전의 엄연한 역사적 침략사실과 진부(眞否)에 상호 입장 차이가 많은 ‘납치의혹’을 혼돈시키려는 일부 여론에 오도·좌우돼서는 안될것이다. 세계가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유럽연합(EU)·남미공동시장(MERCOSUR) 등 경제적·정치적으로 블록화돼 가는 시대조류에,일본은 그 기반이구미에 있기보다 아시아에 있다는 확실한 인식으로 20세기 불미한 과거를 청산하고 북·일 수교를 이룩해 새롭고 깨끗하고 덕(德) 있는 21세기 일본의위상을 확립하기를 기대한다.
[孫 章 來 前말레이시아 대사]
1999-12-1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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