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군 화현리 ‘전통술 박물관’(생활속의박물관·미술관:13­2)

포천군 화현리 ‘전통술 박물관’(생활속의박물관·미술관:13­2)

입력 1998-10-30 00:00
수정 1998-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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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술의 맛·문화 고스란히/술빚는 도구 300여점 단계별 전시/주병·편병 등엔 조상의 슬기·멋 묻어나고/옛문헌 고증,전통술 100여종 이미 재현

재너머 성권롱 집의 술 익는단 말 어제 듣고/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타고/아해야 네 권롱 계시냐 정좌수 왔다 사뢰라.

애주가였던 松江 鄭澈의 해학 넘치는 시조다.명절이 가까워 오면 집집마다 술이 익어가던 시절이 있었다.독특한 맛과 향기를 내는 술은 그 집안의 자랑거리였다.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그런 정겨운 모습이 실종돼 버렸다.경기도 포천군 화현면 화현리에 있는 ‘전통술박물관’은 잃어버린 우리 술의 맛과 문화를 되찾고자 하는 한 일가(一家)의 집념이 배어 있는 곳이다.

박물관장인 裵永浩씨(40·배상면주가 대표)는 “술은 ‘마시는 것’이 아니라 ‘먹는 음식’이라는 우리 고유의 식문화를 되살려야 한다”고 말한다.한평생 누룩을 연구한 부친 裵商冕씨 뒤를 이어 ‘배상면주가’를 설립했다.

양조장과 전시장,연구실 등을 갖춘 건물 2층에 자리잡은 박물관에는 술빚는 도구 300여점이 술이 만들어지는 단계별로 전시돼 있다.수십여년전까지만 해도 우리 어머니들이 부엌에서 전통 약주와 탁주를 빚을 때 쓰던 것들이다.50여평 쯤 되는 전시실에 들어서면 먼저 다양한 모양의 누룩틀과 ‘축국문(祝麴文)’이라는 제목의 글귀가 눈길을 끈다.술맛의 생명이라는 좋은 누룩이 디뎌지기를 기원하고 그 방법을 알리는 내용이다.

우리 전통술은 생밀을 껍질채 갈아 반죽해 곰팡이를 띄워 만든 막누룩을 쓴다.이는 쌀로 만든 일본 누룩 ‘입국(粒麴)’과 구별되는데 술맛도 천양지차다.일본식 청주가 단순·경쾌한 맛을 내는 반면,단백질 지질 등 각종 무기질을 포함한 밀껍질이 들어간 우리술은 그윽하면서도 복잡미묘한 맛을 낸다.

누룩이 완성되면 쌀을 쪄 술밥을 만든다.생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설익힌 상태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백하주 향온주 등이 이렇게 만들어진다.박물관에 있는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시루들이 여기 쓰인다.누룩을 부수어 술밥과 섞어 약수에 버무린 뒤 술독에 켜켜로 넣으면 술빚기는 일단 끝.

짧게는 3일,길게는 100일쯤 지나면 술이 익는다.이때 찌꺼기가 포함된 걸죽한 술덧에서 약주를 떠내는데 여기에 쓰이는 도구가 ‘용수’와 ‘귀때사발’이다.싸리나 대를 엮어 원통모양으로 만든 용수를 술독에 지르고,부리모양의 주둥이가 달린 귀때사발로 노릇하게 익은 약주를 떠낸다.약주를 떠내고 남은 찌꺼기에 다시 물을 부어 채로 거른 것이 탁주인 막걸리다.술덧을 ‘소주고리’나 ‘는지’(가정용 소주고리)에 넣고 끓여 알콜증기를 받아낸 것이 소주다. 박물관에 전시된 이러한 술도구들은 대개 각 지방 가정에서 쓰던 것으로 배씨가 10여년간 모았다.투박하지만 자연스런 멋과 실용성이 녹아 있다.주병·오리병·각병·자라병·편병·잔·사발 등 술병이나 잔 하나하나에도 조상들의 슬기와 멋이 구석구석 묻어 있다.

건물 지하의 연구실에서는 생화학을 전공한 부인 崔善珠씨(36)가 ‘제민요술’‘음식디미방’‘사시찬요초’‘증보산림경제’등 원방이 적힌 옛 문헌을 고증해 가며 전통술을 재현해내고 있다.이름만 전하는 것까지 하면 전통약주는 600여가지 정도가 되는데 지금까지 100여종을 재현해 냈고,몇가지는 상품화 했다.1층 시음코너에서는 냉이주 창포주 국화주 등 각종 세시주와 시험주,술지게미로 만든 약과 빵 엿 주편 화채 등을 무료로 맛볼 수 있다.배씨는 “조만간 ‘가양주(家釀酒)교실’을 개설,전통주 빚는 법을 일반에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했다.

박물관에 가려면 서울에서 퇴계원을 지나 일동방향으로 가는 47번 국도를 타면 된다.퇴계원에서 진접읍을 지나 승용차로 30분 정도 달리면 운악산 밑자락에 이르러 박물관을 알리는 푯말이 보인다.대중교통으로는 청량리나 상봉동에서 일동방향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있다.1시간30분 정도 소요.연중무휴로 문을 열며 관람은 무료.주변에 일동레이크CC 제일유황온천 일동하와이 운악승마장 등 레포츠 및 휴식시설이 많아 주말 가족나들이에 제격이다.(0357)31­0442
1998-10-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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