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相生’을 위한 고통과 창조/李御寧(국난극복의 지혜를 듣는다)

‘相生’을 위한 고통과 창조/李御寧(국난극복의 지혜를 듣는다)

이어령 기자 기자
입력 1998-09-22 00:00
수정 1998-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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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없는 차 벽에 부딪힌 격/경제난국 충격완화 ‘융합의 언어’ 절실

우리는. IMF를 ‘I am fool’이 아니면 ‘I am fighting’이라고 읽었다. 그러나 홍콩같은 데서는 뜻밖에도 IMF를 ‘I am fox(나는 여우다)’라고 읽기도 한다. 같은 글자를 놓고도 이렇게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우리가 오늘의 국난을 극복하는데 있어서는 지나친 자조도 근거 없는 과신도 모두가 금물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여우와 같은 꾀와 상황에 따른 변신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영국이 맨 먼저 산업혁명을 일으킨 것은 그만큼 영국의 경제 상황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곡물난이 아주 심각했다. 말 한마리 키우는데 여덟명의 노동자가 소비하는 식량이 필요했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는 “영국에서 수송에 사용되는 100만마리의 말을 기계화하면 800만명의 노동자를 위한 식량을 얻을 수가 있다”고 말했다. 탄광의 갱차로 사용되던 증기기관차가 당시 최대 교통수단이던 우편마차를 대신하게 된 것은 영국의회가 수입곡물에 높은 세금을 부가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증기기관의연료인 석탄 값이 말의 사료 값보다 싸게 먹혔기 때문에 철도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듯이 역사는 이렇게 일직선이 아니라 기승전결(起承轉結)의 ‘전(轉)’처럼 뜻하지 않은 국면으로 곡선을 그려가는 수가 많다.

지금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한창 유행하고 있다. 분명히 기업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전체가 구조를 새롭게 짜야만 살아갈 수 있는 역사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동안 우리 경제의 고도 성장이 산업적 패러다임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오늘의 국난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보시대의 패러다임이어야 할 것이다.

말을 철마로 바꾸듯이 아톰을 토대로 한 경제를 이제는 비트의 경제로,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디지털 경제로 그 물꼬를 틀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물론이고 교육과 문화 그리고 개인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고와 행동의 가치체계를 아톰이라는 물질에서 비트라는 정보신호로 바꿔가야 한다.

정보기술은 셰어(나눔)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물질은 나눌수록 가난해지지만 정보는 나눌수록그 힘이 커진다. 마치 노래를 여럿이서 부르면 신명이 더 나는 것처럼 정보시대의 특징은 서로 느끼고 함께 살아가는 상생(相生)의 철학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생의 정보 패러다임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며 독점이 아니라 분유(分有)이다.

우리의 경제 난국은 그동안 고속으로 달리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가 벽에 부딪힌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제 힘으로는 그 속도를 멈출 수도 핸들을 틀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질주하는 그 자동차를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 충격은 클 것이다. 당장 시급한 문제는 그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충격완화장치인 ‘쇼크소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IMF를 ‘I am fox’로 받아들이는 꾀이고 변신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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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위해서 지금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절대언어(絶對言語)가 아니라 융합의 언어이다. ‘이것만’이라는 배제적 언어가 아니라 ‘이것도’라는 포용적 태도이다. 실체론이 아니라 관계론이다. 아톰이 아니라 비트다.그리고 지하자원이 아니라 두뇌와 문화자원이다. 오늘의 위기는 바로 말을 철마로 바꾼 것과 같은 패러다임 전환의 전기(轉機)이기도 한 것이다.<이화여대 석학교수>
1998-09-2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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