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구로사와 아키라/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이세기 기자 기자
입력 1998-09-08 00:00
수정 1998-09-08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의 영화 ‘라쇼몬(羅生門)’은 일본의 아쿠타가와 문학상으로 유명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라쇼몬’과 ‘숲속에서’를 묶어서 각색한 영화다. 작품의 배경은 내전으로 피폐한 12세기 헤이안시대. 숲속에서 살해된 한 무사의 죽음을 둘러싸고 네사람의 엇갈린 증언을 통해 ‘살인범은 누구인가’라는 미스터리 모티브로 스토리를 끌어나간다.

인간의 이기주의와 존재의 불안을 그리면서도 인간에 대한 냉소적인 관점을 휴머니즘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구로자와 영화의 백미다. 1950년에 개봉되어 다음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이후 30여년이 지난 82년에 다시 베니스영화제 역대 대상 가운데 최고작품으로 선정된 것은 그의 작품성과 예술성의 생명이 얼마나 진실한가를 보여준 예이다.

전후 척박한 영화환경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적 도전성은 카메라로 해(太陽)를 직접 찍는 것을 금하던 시절에 숲 사이로 비친 해를 찍어 과감한 조명의 미학적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또 최소한의 인물설정과 최소한의 공간으로 최대의 영상형식미를 거둔것도 일본인 특유의 절제·생략의 극치로 평가된다. 83세이던 지난 93년, ‘마다다요(아직은 아니다)’를 만들었을때는 “구로자와는 더이상 떠오를 수 없는 태양”이라는 혹평을 받았으나 뉴욕타임스는 그해 오스카상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이 작품을 유력하게 손꼽았다.

최근 “시간이 별로 없다. 죽기 전에 찍고싶은 영화가 너무 많다”고 열정을 보이는 그를 찾아간 프랑스의 세계적 문명비평가이자 국제정치학자인 기소르망은 그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에는 두명의 왕(王)이 있다. 왕궁에 살고 있는 아키히토(明仁) 일왕과 일본인의 정신세계의 왕인 구로사와 아키라가 바로 그”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있다.

20세기 일본 영화계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그의 신조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내서 최선을 다해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의 영화가 세계 무대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내어 최선을 다해 밀어붙인 순수성 때문이다.

“일본을 향해서가아니라 전세계를 향해서 영화를 만든다”는 그의 영화는 결국 ‘일본적인 것을 통해 인간의 보편성을 추구하려는 깊은 뜻’이 숨어있다. 우리 영화계도 한번쯤 새겨 들을만한 경구다.
1998-09-08 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유튜브 구독료 얼마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나요?
구글이 유튜브 동영상만 광고 없이 볼 수 있는 ‘프리미엄 라이트'요금제를 이르면 연내 한국에 출시한다. 기존 동영상과 뮤직을 결합한 프리미엄 상품은 1만 4900원이었지만 동영상 단독 라이트 상품은 8500원(안드로이드 기준)과 1만 900원(iOS 기준)에 출시하기로 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적절한 유튜브 구독료는 어느 정도인가요?
1. 5000원 이하
2. 5000원 - 1만원
3. 1만원 - 2만원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