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이의현의 초상화(한국인의 얼굴:110)

조선후기 이의현의 초상화(한국인의 얼굴:110)

황규호 기자 기자
입력 1997-07-12 00:00
수정 1997-07-12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얼굴뼈대 덮은 살갗을 중요시/검버섯 핀 노인얼굴 애써 표현

조선 후기의 초상화에는 얼굴 뼈대를 덮은 살갗을 중요하게 다룬 흔적이 보인다.이른바 육리문이라고 하는 살갗의 결을 살려 초상화를 그렸다.그리고 움푹 들어간 얼굴 뼈마디 부분의 살갗은 붓질을 거듭하여 어두운 느낌이 들도록 처리했다.그 반대로 도드라진 부분은 붓질을 덜하는 방법을 썼다.그런 화법의 살갗 표현은 물론 동양 전래의 골상학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얼굴의 살갗을 너무 중시한 나머지 검버섯까지도 빼놓지 않고 그린 초상화가 있다.도곡 이의현(1669∼1745)의 초상화인데,얼굴은 온통 검버섯 투성이다.검버섯이 핀 노인 얼굴을 애써 표현한 초상이다.초상화의 주인공은 숙종과 영조 두 임금때의 문신.우리 관습적인 나이로 일흔일곱살에 세상을 떴다.초상화 오른쪽에는 그의 나이 일흔일곱살이 되던 해에 그렸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그러니까 수를 다할 무렵의 노인 얼굴이다.저승꽃이라고도 말하는 검버섯이 얼굴에 가득한 이유를 알만하다.비록 검버섯이 피었을지라도,곱게늙은 노인얼굴에는 기품이 어렸다.노인이라서 눈꺼풀이 내려앉았다.그래도 곧은 성품이 아직도 눈매에 살아있다.용미형 눈썹이 점잖은데,그 언저리에서 시작한 용비형 코가 곧고 길게 내려왔다.꼭다문 입가로는 백수의 수염이 알맞게 자랐다.

옷은 관복을 차려입고 머리에는 사모를 썼다.의관을 제대로 갖춘 노인의 벼슬을 말하면 영의정을 지냈다.그러나 뒷날 경기도 양주에 머물면서 치사하여 모든 벼슬을 스스로 내놓았다.관직에서도 청론을 심으려 노력했던 탓에 사람의 신망을 크게 얻은 그는 유명한 청백리이기도 했다.이 초상화는 그런 이의현의 내면성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초상화의 기본 요건의 하나는 주인공의 내면적 정신세계를 얼굴에 담아내는 일이다.이를 전신이라고 한다.또 마음을 그린다는 뜻에서 사심이라는 말도 쓴다.우리나라에서 전신이라는 용어가 처음 나오는 문헌은 조선초기의 ‘삼봉집’이다.그러나 이를 본격적인 이론으로 정립한 이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석주(1634∼1684년)다.사은사로 청에 다녀온 적도 있는 그는 ‘식암집’에서전신에 대한 해답을 확실히 던져주었다.



얼굴에 검버섯이 많은 이의현의 초상화는 가로 38㎝,세로 28㎝ 크기의 종이에 그렸다.최근 미국에서 수집해와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황규호 기자>
1997-07-12 1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