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남한방송 듣고 “자유세계 품으로” 꿈 착실히 키워/지난해 3월 자식들엔 숨긴채 국경부근 장모댁 이동/24일 새벽녘 도강성공→조선족 보호 받으려 은신생활
22일 귀순한 북한주민 두가족 가운데 김영진씨(50)가족은 지난해 3월 북한을 탈출,중국에 머무르면서 10월에는 둘째아들 해광군(13)이 일가족의 북한 탈출기를 담은 일기를 MBC에 보내 방송됐던 것으로 밝혀졌다.유송일씨(46)가족과는 중국에서 만나 행동을 같이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MBC에 보도된 해광군의 일기를 토대로 김씨 가족의 탈출과정을 재구성해본다.
김씨 일가족이 고향인 평남 문덕군을 떠나 부인 김찬옥씨(46)의 어머니가 사는 함북 무산군으로 향한 것은 지난 96년 3월19일이었다.김씨는 남한의 방송을 들어오면서 자유세계의 꿈을 키워왔다.식량난으로 집까지 팔아치운 처지에 드디어 탈북키로 하고 국경 부근에 있는 장모의 집으로 떠났다.아내의 양해는 얻어냈지만 해룡(16),해광(13) 두 아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두 아들은 외할머니가 있는 무산에 가면 최소한 굶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김씨 가족은 아이들이 배고파 우는 소리등으로 아수라장인 기차안에서 꼬박 이틀동안 부대꼈다.해광군은 기차안에서 굶주림에 시달린 한 청년이 기차에 누워있다 숨을 거두자 충격을 받았다.사람 죽는 것을 처음 봤다.
3월 21일 무산역에 도착한 김씨 가족을 장모는 반갑지 않은 기색으로 맞이했다.배는 곯지 않겠지 하는 기대감에 찾아갔지만 외가의 사정도 별로 다를바 없었다.해광군은 잠결에 외할머니가 어머니에게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로 끼니를 때우는데 너희들까지 왔으니 걱정거리」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실망감 밖에 들지 않았다.
김씨는 탈출하기 위해 가족들을 데리고 국경까지 왔지만 정작 국경에서 결심이 서지 않았다.그러나 배고픔에 울먹이는 아들들을 생각하곤 마음을 다잡아먹었다.김씨는 두 아들에게 『이제 살길은 남조선으로 가는 것 뿐』이라며 『그래야 너희들도 공부를 할 수 있고 배불리 먹을 수도 있다』고 설득했다.해광군은 아버지가 나라를 배반하자고 국경 부근으로 우리를 데리고온 나쁜 사람으로 생각됐다.해룡군도 아버지의 설득에 맞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의 품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말했다.어머니 김찬옥씨도 아들들을 설득했다.두 아들은 결국 아버지를 따르기로 했다.
김씨 가족은 23일 밤 10시부터 두만강을 건널 준비를 하고 두만강기슭에 가까이 접근했다.상오 2시까지 은밀히 정찰을 하면서 보초병과 조명 등의 움직임을 살폈다.조각달도 지고 캄캄한 야밤이었다.살아도 두 아들을 먼저 살리겠다며 김씨는 두 아들을 흰포대로 위장해 포복으로 강을 건넜다.도강에 성공,중국땅을 밟은 것은 24일 새벽 3시30분이었다.
중국국경 부근에 사는 조선족 부부가 경계심을 표하는 김씨 가족을 환대했다.해광군에게 중국땅은 먹을 것도 많고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학교에 다니는 등 놀라움 투성이었다.더욱이 남조선이 아주 잘 살고 자유가 있으며 자기의 희망을 마음껏 꽃피울 수있는 지상낙원이라는 것을 듣고 더욱 놀랐다.한국으로 빨리 가서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나 조국통일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싶다는 것이 해광군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22일 귀순한 북한주민 두가족 가운데 김영진씨(50)가족은 지난해 3월 북한을 탈출,중국에 머무르면서 10월에는 둘째아들 해광군(13)이 일가족의 북한 탈출기를 담은 일기를 MBC에 보내 방송됐던 것으로 밝혀졌다.유송일씨(46)가족과는 중국에서 만나 행동을 같이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MBC에 보도된 해광군의 일기를 토대로 김씨 가족의 탈출과정을 재구성해본다.
김씨 일가족이 고향인 평남 문덕군을 떠나 부인 김찬옥씨(46)의 어머니가 사는 함북 무산군으로 향한 것은 지난 96년 3월19일이었다.김씨는 남한의 방송을 들어오면서 자유세계의 꿈을 키워왔다.식량난으로 집까지 팔아치운 처지에 드디어 탈북키로 하고 국경 부근에 있는 장모의 집으로 떠났다.아내의 양해는 얻어냈지만 해룡(16),해광(13) 두 아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두 아들은 외할머니가 있는 무산에 가면 최소한 굶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김씨 가족은 아이들이 배고파 우는 소리등으로 아수라장인 기차안에서 꼬박 이틀동안 부대꼈다.해광군은 기차안에서 굶주림에 시달린 한 청년이 기차에 누워있다 숨을 거두자 충격을 받았다.사람 죽는 것을 처음 봤다.
3월 21일 무산역에 도착한 김씨 가족을 장모는 반갑지 않은 기색으로 맞이했다.배는 곯지 않겠지 하는 기대감에 찾아갔지만 외가의 사정도 별로 다를바 없었다.해광군은 잠결에 외할머니가 어머니에게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로 끼니를 때우는데 너희들까지 왔으니 걱정거리」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실망감 밖에 들지 않았다.
김씨는 탈출하기 위해 가족들을 데리고 국경까지 왔지만 정작 국경에서 결심이 서지 않았다.그러나 배고픔에 울먹이는 아들들을 생각하곤 마음을 다잡아먹었다.김씨는 두 아들에게 『이제 살길은 남조선으로 가는 것 뿐』이라며 『그래야 너희들도 공부를 할 수 있고 배불리 먹을 수도 있다』고 설득했다.해광군은 아버지가 나라를 배반하자고 국경 부근으로 우리를 데리고온 나쁜 사람으로 생각됐다.해룡군도 아버지의 설득에 맞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의 품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말했다.어머니 김찬옥씨도 아들들을 설득했다.두 아들은 결국 아버지를 따르기로 했다.
김씨 가족은 23일 밤 10시부터 두만강을 건널 준비를 하고 두만강기슭에 가까이 접근했다.상오 2시까지 은밀히 정찰을 하면서 보초병과 조명 등의 움직임을 살폈다.조각달도 지고 캄캄한 야밤이었다.살아도 두 아들을 먼저 살리겠다며 김씨는 두 아들을 흰포대로 위장해 포복으로 강을 건넜다.도강에 성공,중국땅을 밟은 것은 24일 새벽 3시30분이었다.
중국국경 부근에 사는 조선족 부부가 경계심을 표하는 김씨 가족을 환대했다.해광군에게 중국땅은 먹을 것도 많고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학교에 다니는 등 놀라움 투성이었다.더욱이 남조선이 아주 잘 살고 자유가 있으며 자기의 희망을 마음껏 꽃피울 수있는 지상낙원이라는 것을 듣고 더욱 놀랐다.한국으로 빨리 가서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나 조국통일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싶다는 것이 해광군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1997-01-24 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