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영도적 위치 부각·대남비난 완화
북한의 97년 신년사에 나타난 전반적인 특징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내외 정책변화를 시사하는 새로운 정책대안의 제시없이 기존의 입장을 견지,「우리식 사회주의」의 건설과 김일성 유훈의 철저한 관철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으나 95,96년 신년사와는 달리 모든 분야에서 「김정일동지는 당과 군대,조국의 빛나는 상징」이라는 등의 표현을 써가며 김정일의 영도적 위치를 부각시키고 있어 권력승계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북한은 경제문제와 관련,최우선 순위로 『먹는 문제를 결정적으로 풀어야 한다』면서 『농사를 과학기술적으로 지어 쌀풍년,고기풍년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해 역시 식량난이 최대 해결과제임을 드러냈다.또 「대외시장의 적극적인 개척」 「석탄과 전력,금속에 대한 수요 보장」을 강조,식량·외화·에너지 등 「3난」이 여전함을 입증했다.그러나 이같은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 고수 및 군사적 호전성에 대해서는 여전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대남·통일면에 있어서는 고려연방공화국 창립 등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 하면서 남한정부는 최악의 상태에 있는 북남관계를 해결할 의지가 없음을 강조,남북관계의 전향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다.그러나 종전의 통일전략기조를 되풀이 하고는 있으면서도 남한정권 타도선동이 없는 등 지난해 보다는 우리 정부에 대한 비난의 강도를 다소 완화하는 변화를 보였다.
대외정책면에 있어서 북한은 미국에 평화보장체계 수립을 촉구하는 등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미·북관계 개선의지를 일부 드러내기도 했다.또 한반도 통일문제를 민족적인 문제인 동시에 유관국들도 협력해야 할 국제적 문제라고 언급함으로써 한반도문제를 대미협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도를 나타냈다.
북한의 신년사로 볼때 북한의 대내외 정책에는 당분간 커다란 변화가 없을 것이며 김정일의 권력체제강화와 체제유지를 위한 폐쇄적인 정책들을 견지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한편 북한은 지난 94년 김일성의 육성으로 신년사를 방송한 뒤 김일성 사망후에는 「당보·군보·청년보」공동사설 형식으로 신년사를 발표해 왔다.<김경홍 기자>
북한의 97년 신년사에 나타난 전반적인 특징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내외 정책변화를 시사하는 새로운 정책대안의 제시없이 기존의 입장을 견지,「우리식 사회주의」의 건설과 김일성 유훈의 철저한 관철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으나 95,96년 신년사와는 달리 모든 분야에서 「김정일동지는 당과 군대,조국의 빛나는 상징」이라는 등의 표현을 써가며 김정일의 영도적 위치를 부각시키고 있어 권력승계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북한은 경제문제와 관련,최우선 순위로 『먹는 문제를 결정적으로 풀어야 한다』면서 『농사를 과학기술적으로 지어 쌀풍년,고기풍년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해 역시 식량난이 최대 해결과제임을 드러냈다.또 「대외시장의 적극적인 개척」 「석탄과 전력,금속에 대한 수요 보장」을 강조,식량·외화·에너지 등 「3난」이 여전함을 입증했다.그러나 이같은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 고수 및 군사적 호전성에 대해서는 여전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대남·통일면에 있어서는 고려연방공화국 창립 등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 하면서 남한정부는 최악의 상태에 있는 북남관계를 해결할 의지가 없음을 강조,남북관계의 전향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다.그러나 종전의 통일전략기조를 되풀이 하고는 있으면서도 남한정권 타도선동이 없는 등 지난해 보다는 우리 정부에 대한 비난의 강도를 다소 완화하는 변화를 보였다.
대외정책면에 있어서 북한은 미국에 평화보장체계 수립을 촉구하는 등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미·북관계 개선의지를 일부 드러내기도 했다.또 한반도 통일문제를 민족적인 문제인 동시에 유관국들도 협력해야 할 국제적 문제라고 언급함으로써 한반도문제를 대미협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도를 나타냈다.
북한의 신년사로 볼때 북한의 대내외 정책에는 당분간 커다란 변화가 없을 것이며 김정일의 권력체제강화와 체제유지를 위한 폐쇄적인 정책들을 견지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한편 북한은 지난 94년 김일성의 육성으로 신년사를 방송한 뒤 김일성 사망후에는 「당보·군보·청년보」공동사설 형식으로 신년사를 발표해 왔다.<김경홍 기자>
1997-01-03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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