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정리하는 각종 매체의 발걸음이 바쁘게 느껴지는 1996년 마지막 주,내게도 인터뷰 차례가 왔다.일단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를 정리하라는 요구는 늘 나를 당황케 한다.사람이 1년 단위로 무엇인가를 사고해야 한다는 것도 부자연스럽지만 때론 그럴듯한 「꺼리」를 나열해야 한다는 당위성때문에 「억지」가 개입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삶의 흐름을 양쪽으로 막아 그 토막만 보겠다고 하는 것은 마치 흐르는 강물의 일부를 손으로 길어 올린다고 생각할때 오는 허무감과 무력감을 안겨줄때가 있다.하물며 다 돌아보지도 못한 수천의 무대에서 무엇을 토막쳐 길어올리겠는가? 그래서 올해 나는 생각을 바꿨다.올 한해의 현상을 큰 흐름의 연장선 상에서 보기로 했다.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는 우리에게 동구의 우수한 음악가들을 싼값에 제공하는 변화를 가져왔다.올해도 예외없이 동구권 음악단체와 음악가들이 우리나라 구석구석의 음악적 수준향상을 도운 것이 특기할 만하다.그런가하면 서구의 유명 연주가들에 대한 우리의 오래된신비감은 올해도 큰 적자를 감수하면서 그들을 데려와야만 하는 서구 콤플렉스로 여전히 드러났다.한편 80년대 후반 이후 「우리가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반성에서 시작된 크고작은 음악축제들의 횡적 확장이 올해로 일층 극대화되었다.이제는 그동안 펼쳐 놓았던 많은 물건중에 좋은 것을 골라 보고자 하는 의욕이 싹트는 것을 느낀다.그리고 음악가들의 청중 찾아가기가 늘었다.음악가에게 공동체적 사고를 엿보기란 참으로 힘들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큰 의미로 다가온다.또한 미래의 청중을 위한 기획음악회들이 어느해보다도 성공적이었다.한마디로 청소년 청중은 올 음악계의 희망이었다.
흐름은 계속된다.그런데 무언가 빠진게 있다.우리에게 더 이상 감동이 없다.그 많은 무대에서 우리가 진실로 건졌어야 할 음악의 감동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는 우리에게 동구의 우수한 음악가들을 싼값에 제공하는 변화를 가져왔다.올해도 예외없이 동구권 음악단체와 음악가들이 우리나라 구석구석의 음악적 수준향상을 도운 것이 특기할 만하다.그런가하면 서구의 유명 연주가들에 대한 우리의 오래된신비감은 올해도 큰 적자를 감수하면서 그들을 데려와야만 하는 서구 콤플렉스로 여전히 드러났다.한편 80년대 후반 이후 「우리가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반성에서 시작된 크고작은 음악축제들의 횡적 확장이 올해로 일층 극대화되었다.이제는 그동안 펼쳐 놓았던 많은 물건중에 좋은 것을 골라 보고자 하는 의욕이 싹트는 것을 느낀다.그리고 음악가들의 청중 찾아가기가 늘었다.음악가에게 공동체적 사고를 엿보기란 참으로 힘들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큰 의미로 다가온다.또한 미래의 청중을 위한 기획음악회들이 어느해보다도 성공적이었다.한마디로 청소년 청중은 올 음악계의 희망이었다.
흐름은 계속된다.그런데 무언가 빠진게 있다.우리에게 더 이상 감동이 없다.그 많은 무대에서 우리가 진실로 건졌어야 할 음악의 감동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1996-12-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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