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눈·도톰한 입에 신비의 미소/화관드림·흘러내린 머리칼 소담스러워/통통한 볼 받치고 있는 목엔 세가닥 주름
신라의 불교가 관음신앙을 받아들인 시기는 7세기 초로 보인다.「삼국유사」를 보면 이 시기에 소판무림(소판무림)이 1천의 관음상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아들을 얻기위해 관음상을 조성했는데,바로 자장을 낳았다는 것이다.자장의 탄생설화는 신라가 관음신앙을 본격적으로 수용했다는 사실을 반영한 기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한 신라의 관음신앙은 신라인들의 예술적 감각을 자극시켰다.그 결과 국보 184호 금동관세음보살입상과 같은 조형미술이 창조되었다.지난 1976년 경북 구미시 고아면 봉한2동에서 다른 금동관음보살입상과 함께 출토된 이 관음보살상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얼굴(상호)이 지극히 아름다울 뿐 아니라 여러 치레걸이가 호화롭기 그지 없다.7세기께 작품이다.머리에 쓴 화관부터 찬란하다.백제 관음보살상들의 소박한 화관과 사뭇 달라 꽃장식이 어여쁘거니와 이마를 살짝 덮은 주름진 천이 부드럽다.화관 정면에 돌출한 원형장식 안쪽에는 화불이 자리잡았다.보살의 이름을 관세음으로 일러주는 화불은 앉은자세를 했다.화관에 달린 드림이 엄청 길어 어깨를 걸치고도 더흘러내려 팔꿈치께에 와서 멈추었다.드림과 겹쳐 어깨로 흘러내린 머리칼도 소담스럽다.
얼굴은 한마디로 너무 예쁘다.오목조목한데가 없이 매끄러워 보이는 얼굴 윤곽 전체에는 애티가 가득 들어있다.그래서 귀여운 얼굴이 되었고,결국은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온다.분명히 웃음을 머금은 얼굴이다.그런데 어디에 웃음을 담았다고 꼬집어 말하기 어렵다.이 관세음보살상에 어린 엷디엷은 미소의 묘미를 말하라면,웃음을 지어낸 구석을 쉽사리 찾아낼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어떻든 관세음보살의 웃음은 신비롭다.하기야 풍진의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헤픈 웃음과는 구별될 수밖에 없다.눈매가 가늘어 보이나 사실은 눈을 유난히 강조했다.입을 작게 표현하여 앳된 관세음보살이 되었다.통통한 볼을 받치고 있는 목에 세가닥의 주름(삼도)이 졌다.어리게 보이는 얼굴에 비해 몸은 당당하다.전혀 빈약하지 않은 목을 아래로 약간 비켜 구슬목걸이를 걸었다.
그 당당한 체구에 걸친 옷자락이 유연하게 흘러내려왔다.옷 위에다는 온갖 작은 구슬과 커다란 보주를 꿰어만든 여러가닥의 치레걸이를 덧 입었다.치레걸이는 작품의 우수성을 더 해주는 요소로 작용했다.그토록 아름다운 걸작의 조각을 창조한 신라인들의 내면세계에는 물론 깊은 신심이 깔려있다.
신라불교에서 관음신앙을 본격적으로 퍼뜨린 고승은 의상(625∼702년)이다.그와 인연을 가진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건전리 낙산사가 신라의 대표적 관음도량이다.낙산사에는 근래 만든 해수관음상이 있고,삼국유사에 기록한 서기 482년 설화속의 인물 조신의 활동무대이기도 하다.<황규호 기자>
신라의 불교가 관음신앙을 받아들인 시기는 7세기 초로 보인다.「삼국유사」를 보면 이 시기에 소판무림(소판무림)이 1천의 관음상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아들을 얻기위해 관음상을 조성했는데,바로 자장을 낳았다는 것이다.자장의 탄생설화는 신라가 관음신앙을 본격적으로 수용했다는 사실을 반영한 기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한 신라의 관음신앙은 신라인들의 예술적 감각을 자극시켰다.그 결과 국보 184호 금동관세음보살입상과 같은 조형미술이 창조되었다.지난 1976년 경북 구미시 고아면 봉한2동에서 다른 금동관음보살입상과 함께 출토된 이 관음보살상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얼굴(상호)이 지극히 아름다울 뿐 아니라 여러 치레걸이가 호화롭기 그지 없다.7세기께 작품이다.머리에 쓴 화관부터 찬란하다.백제 관음보살상들의 소박한 화관과 사뭇 달라 꽃장식이 어여쁘거니와 이마를 살짝 덮은 주름진 천이 부드럽다.화관 정면에 돌출한 원형장식 안쪽에는 화불이 자리잡았다.보살의 이름을 관세음으로 일러주는 화불은 앉은자세를 했다.화관에 달린 드림이 엄청 길어 어깨를 걸치고도 더흘러내려 팔꿈치께에 와서 멈추었다.드림과 겹쳐 어깨로 흘러내린 머리칼도 소담스럽다.
얼굴은 한마디로 너무 예쁘다.오목조목한데가 없이 매끄러워 보이는 얼굴 윤곽 전체에는 애티가 가득 들어있다.그래서 귀여운 얼굴이 되었고,결국은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온다.분명히 웃음을 머금은 얼굴이다.그런데 어디에 웃음을 담았다고 꼬집어 말하기 어렵다.이 관세음보살상에 어린 엷디엷은 미소의 묘미를 말하라면,웃음을 지어낸 구석을 쉽사리 찾아낼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어떻든 관세음보살의 웃음은 신비롭다.하기야 풍진의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헤픈 웃음과는 구별될 수밖에 없다.눈매가 가늘어 보이나 사실은 눈을 유난히 강조했다.입을 작게 표현하여 앳된 관세음보살이 되었다.통통한 볼을 받치고 있는 목에 세가닥의 주름(삼도)이 졌다.어리게 보이는 얼굴에 비해 몸은 당당하다.전혀 빈약하지 않은 목을 아래로 약간 비켜 구슬목걸이를 걸었다.
그 당당한 체구에 걸친 옷자락이 유연하게 흘러내려왔다.옷 위에다는 온갖 작은 구슬과 커다란 보주를 꿰어만든 여러가닥의 치레걸이를 덧 입었다.치레걸이는 작품의 우수성을 더 해주는 요소로 작용했다.그토록 아름다운 걸작의 조각을 창조한 신라인들의 내면세계에는 물론 깊은 신심이 깔려있다.
신라불교에서 관음신앙을 본격적으로 퍼뜨린 고승은 의상(625∼702년)이다.그와 인연을 가진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건전리 낙산사가 신라의 대표적 관음도량이다.낙산사에는 근래 만든 해수관음상이 있고,삼국유사에 기록한 서기 482년 설화속의 인물 조신의 활동무대이기도 하다.<황규호 기자>
1995-07-2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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